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이 Jun 12. 2023

환자를 보다가 2

환자한테 주저리주저리... 

#20230612 #Hereandnow #지금여기 #인연 #관계


 오늘은 전역 이틀을 남긴 병장이 하나 왔다. 규율이나 규칙 등을 따르지 않는 선임이나 후임들에게 잔소리해왔는데, 전역을 앞둔 이제야 그간의 행적들이 걱정된다고 했다. 자기는 사람이 너무 좋고, 말하는 것도 너무 좋아서, 여기서 만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이런 걱정을 얘기하면, ‘군대에서는 가깝게 지내도 전역하면 안 만난다’라고 하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이 인연이 1년이나 함께 지내는, 결코 가볍지 않은 관계이니 밖에서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조언을 구하고자 왔다고 하기에 나는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걸 풀어놓았다. 나는 이미 지나간 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때의 당신은 그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한 것이었을 테니,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라고 했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고,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재에 초점을 맞춰서 살자고, 그래야 나중에 또 되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다. 


 또 나는 이어질 인연은 어떻게 해도 이어지고, 안 될 인연은 어떻게 해도 멀어지게 되어 있더라고 했다. 근데 관계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닌 거 같고, 쌍방으로 노력해야 하는 거 같다고 했다. 여기야 함께 지내니까 쉽게 만나지만, 전역하면 서로 시간을 내서 만나야 하니까. 한쪽만 노력해서 유지될 관계는 건강하지 못한 거 같다고 했다. 


 결국은 내(주변에 남은) 사람들한테 더 에너지를 쏟게 되는 거 같다고 했다. 나도 사람인데 내가 노력한 만큼 상대에게서 내게로 돌아오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근데 이 결론은 내가 당신만큼 인간관계에 노력하지 않아서, 이 결론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당신은 당신만의 답을 찾아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신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고, 감내할 수 있는 만큼 돌려받을, 적당히 노력할 수 있는 적정선을 잘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자를 보다가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