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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n 29. 2023

3차원 마인드맵

생각 정리의 확장, 무의식의 의식화

#20230628 #3차원마인드맵


 글을 쓰기 시작한 초반에는 종이에 펜으로 적었었다. 빈 종이를 내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나면 뿌듯했다. 종이는 몰라도, 펜은 Jet-stream이 아니면 안 되었다. 가뜩이나 쓰는 게 느려서 쓰면서도 잊어버릴까 봐 쫓기듯이 적는데, 다른 펜들은 잘 굴러가지 않아서, 뻑뻑해서 쓰다가 생각이 다 날아가 버린다. (떠올랐던 걸 다 적어야겠다는 내 강박적인 성격도 한몫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모인 종이들은 연도별로 3개의 서류철에 모아두었다.


 지금 나의 글은 모두 타이핑되어 google spreadsheet에 올라가 있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핸드폰이나 노트북, 아이패드로 접근할 수 있다. 언젠가 썼던 것을 다시 찾을 때도 유용하다. 종이에 쓰는 느낌이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핸드폰에 터치펜으로 적기도 하고, 종이에 간단한 아이디어만 적은 뒤 컴퓨터에 옮기기도 한다.      


 지금의 글 정리 형태는 위에서 아래로 하게 되어 있다. 간단하게 보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직선 위에 간간이 점이 찍힌 1차원의 형태다.

직선 위의 점은 다른 점과의 연계가 힘들다.


 이 글들을 3차원으로 가져오면 어떨까? 3차원의 timeline 위에 글 쓴 날짜에 점을 찍고, 그 점에다가 글을 쓰는 것이다. 점을 클릭하면 그날 썼던 글이 보는 식으로. 더불어서 그 글을 쓰게 된 당시의 상황이나 접했던 글, 그림, 동영상 등도 함께 띄워서 볼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관련 있는 점끼리 이어주면,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떠올린 것과 연관되어 있는지, 왜 이런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무의식의 도식화, 무의식의 데이터화이다. (결국 하고자 했던 건 무의식의 의식화이다) 물론 내가 인지한 모든 상황을 글로 정리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글로 적을 만큼 인상적이거나 깊게 생각한 것들만이라도 모아둔다면 내가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생각할지 유추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다른 직선과 만나지 않으면서 점과 점을 이을 수 있다. 3차원의 장점이다.


 과거 기억과 관련된 글들은 그 시점 즈음으로 점을 끌고 가서 둘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대신에 기억의 왜곡이 있을 수 있으니 적었던 날짜, 수정했던 날짜도 같이 적어두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휘발되는 과거의 기억들을 기억이 있을 때라도 적어두면, 나중에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는 주인공 라일리가 잊으면 의식 저 아래로 가라앉아 빛을 잃어버린 기억 구슬들이 나오는데, 그게 무의식(흐물흐물해진 기억 조각들의 스튜?)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잊혀 가는 기억들. 무의식에서 형체를 잃고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알게 모르게 묻어 나온다.


 카테고리별로 점들의 색깔을 다르게 할 수 있다면(ex. 경제/문학/예술/의학/과학/...), 색깔이 다른 점들이 이어질 때 서로 다른 카테고리 간의 접목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통섭(統攝), 융합(融合)이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는데, 한 학문만 깊게 들어가기보다는 다양한 방면을 다양한 방면에 접목시키는 것. 내 머릿속에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게 가능하다면 단순히 연대기적인 물건에서 끝날 게 아니라, 언젠가 ‘ae-ME’를 만드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2-윈터 솔져>에 나오는 아르님 졸라 박사(레드 스컬의 과학자)처럼 나를 데이터에 업로드시키는 것이다. AI를 나처럼 생각하도록 딥러닝 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 경험과 생각을 업로드한 AI, 그래서 나처럼 생각할 수 있는 AI는 나일까? 한 사람의 무의식 전체, 경험 전체를 저장하고 배우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일까, 나와는 별개의 개체일까?

저 데이터뱅크는 졸라 박사일까? 그러면 졸라 박사는 살아있는 것일까?


 형에게도 설명했듯, 한 생각은 한 생각으로만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 생각이 한 생각에서만 기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2차원의 마인드맵은 한계가 있다. 생각들을 잇는 선이 이리저리 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으로도 좋고, VR이나 AR로 만들면 더 현실감이 있을 듯하다. 키워드를 검색하면 관련된 점(글)이 한 번에 눈에 들어오는 기능도 있으면 좋겠다. 영화 <아이언맨 2, 3>에서 나온 것처럼 증강현실로 허공에 띄워놓고 볼 수 있다면, 그걸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다면 더 편할 듯하다. 나는 못 만드는데, 누군가는 만들어주겠지?



cf) 소설/영화 해리포터에는 펜시브(Pensieve)라는, 기억을 담아서 다시 재현할 수 있는 도구가 나온다. 지팡이로 기억을 끄집어내서 펜시브에 넣으면 그 상황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 펜시브로 본 다른 기억들까지 저장? 보관되는지는 모르겠다. 만약 현실에 비슷한 물건을 만들 수 있다면, 한 사람이 보고 듣고 느낀 부분만 되살릴 수 있겠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조엘이 이미 문밖으로 나와버려서 다른 기억은 없다고 외친다. 한 사람의 기억과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부분이지 않나 싶다) 소설에서는 마법이니까 그 외의 부분도 가능한 것 같다. 한 사람이 오감으로 받아들인 것을 재현한 거라 기억 조작도 가능한데, 이는 우리가 기억을 잘못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림 출처:Memory is a strange phenomenon – the pensieve | ADAMS - GAMING BUSINESS REVIEW (word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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