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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Jul 16. 2023

불교와 정신과학 2

받아들임과 앞으로 나아가기 

#20230716 #불교 #정신과학


이전글) 불교와 정신과학: https://brunch.co.kr/@pyschoi/45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면 그게 코끼리의 전부인 줄 안다.* 내가 불교에 대해 끄적이는 게, 주워들은 거, 지레짐작하는 거 몇 개로 아는 척하는 게 이와 비슷하다. 불교는 이론적이거나 글을 읽고 이해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생활 속에서 적극적으로 부딪히면서 마음을 넓혀가는 것인데 행(行)이 적으니 얻는 것도, 아는 것도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불교에 관해서 말한다면, 현재의 내가 이해한 바로 Here & now다. 근데 조금 더 확장된? Here & now를 직역하면 지금, 여기지만, 더 쉽게 바꾸면, 받아들임이겠다. 내가 이해한 불교는 ‘지금, 여기’를 ‘받아들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과거가 어쨌냐’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니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냐는 스스로의 몫이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받아들여야 그다음 단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챙김(mindfulness)은 한 사람이 ‘지금, 여기’를 받아들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 여기’를 넘어서,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지금의 자신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개념을 한 생(生)을 넘어 윤회(輪廻) 차원으로 확장시키면, 지금 내 모습은 전생(前生)의 업(業)의 산물이니 이 자체를 일단 받아들여야 한다. 개인 차원의 Here & now다. 그렇게 생각하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는 정해진다. 미래는 지금의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니 지금 씨앗을 잘 뿌려놔야 미래에 잘 수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은 윤회를 믿지 않으면 땡이다. 


 Here & now를 타인과의 관계 차원에서 보면, 상대방과 나의 관계가 왜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와 악연(惡緣)인지/선연(善緣)인지, 악연이 될지/선연이 될지 모르지만, 이러나저러나 방향은 같다. 선연이라면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지. 악연이라면 받은 대로 돌려주면 다시 악연이 되니까 그러지 않으려면 참아야겠지(나를 힘들게 한 거라면, 받은 만큼 돌려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잘해주는 게 아닐까?). 아니면 오히려 더 잘해주든가. 결국 선연이든 악연이든 상대에게 잘해줘야 한다. 현생(現生)만 놓고 보자면 ‘쟤가 그렇게 해서 나도 그렇게 했어요!’가 되겠지만, 과거의 내가 상대에게 어떤 인(因)을 맺어 놓은 줄 알고? 하지만 이 설명 또한 윤회를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다만, 받은 만큼 상대에게 돌려주면 똑같은 사람이 되고, 받은 거보다 더 좋게 돌려줄 수 있으면 그만큼 (상대보다) 큰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음 그릇의 차이니까 말이다. 




 정신분석은 현생의 원인을 파헤치는 작업이다. 과거와 현재를 주로 다루기에, 앞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서는 답을 내려주지 못하는 게 한계라고 생각했다. 환자가 현실을 대하는 새로운 방법은 환자의 안에 있다고 하면서. 그러면 왜 원인을 알아야 하나? 원인을 알면 지금의 자신을 좀 더 받아들일 수 있다. 분석은 그러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지, 과거를 알려는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애초에 과거는 정답(正答)이 없다. 더군다나 분석해서 드러난 과거를 탓만 하게 되면 괜히 드러낸 셈이다. 과거가 드러나도 이미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고, 그때 그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환자는 또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받아들임이다. 


 지금 내가 이 모습인 것, 상대와의 관계가 그러한 것. 원인이 어쨌건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 어쩌면 원인을 찾는 게 그렇게 크게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원인을 알든 모르든 받아들여야 하는 건 똑같으니까. 어차피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니까. 내가 지금 이 모양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상대와의 관계가 이러한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과거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불교에서는 이를 일심이문(一心二門)이라고 했다. 생멸문(生滅門)과 진여문(眞如門)**. 생멸을 반복하는 윤회의 길로 들어설 것인가, 아니면 생멸에서 벗어나 해탈의 길로 갈 것인가. 지금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다. 지금 처한 상황은 과거의 내가 지어놓은 것이지만, 미래는 지금 내 손에 달렸다. 선택은 스스로의 몫이다. 



*군맹무상(群盲撫象); 『기세경』(起世經) 5권, 5. 여러 용과 금시조품[諸龍金翅鳥品], 경면왕 이야기 

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dataId=ABC_IT_K0660_T_005&gisaNum=0003R&solrQ=query%24%EC%97%AC%EB%9F%AC+%EC%9A%A9%EA%B3%BC+%EA%B8%88%EC%8B%9C%EC%A1%B0%ED%92%88%3Bsolr_sortField%24%3Bsolr_sortOrder%24%3Bsolr_secId%24ABC_IT_GR%3Bsolr_toalCount%241%3Bsolr_curPos%240%3Bsolr_solrId%24ABC_IT_K0660_R_005_0003

**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 

https://kabc.dongguk.edu/content/view?dataId=ABC_IT_K0616_T_001&gisaNum=0032R&solrQ=query%24%EC%83%9D%EB%A9%B8%EB%AC%B8%3Bsolr_sortField%24%3Bsolr_sortOrder%24%3Bsolr_secId%24ABC_IT_GR%3Bsolr_toalCount%2477%3Bsolr_curPos%244%3Bsolr_solrId%24ABC_IT_K0616_R_001_0032

https://jibena.tistory.com/1570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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