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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Aug 22. 2023

50번의 헌혈

세상을 위한다는 소소한 자기만족?

#20230822 #헌혈


 10여 년 전, 동창들이 차 사고로 크게 다치는 일이 2번 있었고, 학생회에서는 헌혈증을 모았다. 수술할 때 쓰인 피 비용을 헌혈증으로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 호기심 삼아서 했던 헌혈로 받아둔 헌혈증이 그렇게도 쓰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간간이 헌혈을 했다.


 나는 늘 마음의 여유가, 시간이 없었던 학생이었고, 시간을 내고 어딘가에 가서 봉사하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근데 헌혈은 상대적으로 가깝고, 시간도 적게 걸렸다. 무언가 베푸는 느낌도 들었고, 마냥 ‘나’만을 위해서 산다는 느낌도 안 드는. (그렇다고 엄청 적극적으로 세상을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깨작거리고 있다고 자위할 수 있는, 그런 마음에서 시작한 헌혈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헌혈이 올해 10년째이다. 횟수를 세어보니, 해마다 적게는 3번, 많게는 7번까지 했다. 전혈헌혈을 하기도 하고, 성분헌혈을 하기도 했다. 피가 모자란다고 문자가 오면 가서 하기도 했다. 특별히 할 게 없으면 헌혈하러 가기도 했다. 간혹 잘 자지 않고, 잘 먹지 않고 헌혈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가지 말라는 말라리아 위험 지역을 가거나, 헌혈 전에 받지 말라는 의료행위를 받고 헌혈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의무감으로, 때로는 취미 아닌 취미로 헌혈을 하고 있다.


 전혈헌혈을 하기 전에는 헤모글로빈(Hb) 검사를 하는데, 남자는 13보다 낮으면 헌혈을 할 수 없다. 신기한 건, 며칠 동안 저녁이 소홀하면 Hb에서 바로 티가 난다. 이 때문에 못해도 3번은 헌혈을 하지 못하고 나왔다. 헌혈을 하려면 밥도 잘 먹어야 한다.


 한 번은 Hb 수치가 10.8이 나와서 다시 검사하니 10.1이 나왔다. 내시경을 받아보라고 해서 받았더니 십이지장에 궤양 흉터가 있다고 했다. 평소에 잘 안 먹고 속이 자주 쓰리더니 그런 일도 있었다. 한 번은 기계 이상으로 헌혈을 못 하고 나온 적도 있었다.


 ‘50’이라고 하니 참 별것 아닌 숫자 같다. 고작 50번 해놓고 유난이다.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100번이고 1,000번이고 몇 번 했다는 것에 매이지 않고 해야 할 텐데. 내 수준은 아직 그러지 못해서 ‘50번이나’ 한 스스로를 이렇게라도 한 번 칭찬해 주고, 남한테도 도장 찍어야 한다. 인정받고 싶은 어린 마음이다. 그래도 미력하게나마 노력하고 있다고, 잘하고 있다고. 이 글은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보상이다.


 하지만 세상을 위해 헌혈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면 헌혈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횟수에 매일 것도 없다. 헌혈보다 더 세상에 이익되는,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위하는 일은 각자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나는 의사니까 환자를 잘 진료하고 잘 낫도록 도와줘야겠지. 어떻게 하면 환자들이 덜 괴롭게 살 수 있을까, 나는 그걸 어떻게 도울 것인가 계속해서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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