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선(線)이란
#20230612 #자존
내가 병사들(특히 제 발로 군대에 오지 않고 끌려온 병사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 ‘네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은 너만의 것이다. 누구도 그 세상을 알 수 없다. 그 세상의 주인공은 너이고, 부모조차 주변인일 뿐이다. 네 삶을 살아라’라고. 그러면 본인의 두 발로 세상에 서 있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을 살아갈 자격이 없는 걸까? 너무 가혹한가? 그렇지만 타의(他意)에 의해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며칠 전 병사 하나가 왔다. 군대라는 집단이 자신을 괴롭히는 건 아닌데, 자꾸 누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고, 해를 가할 것 같고, 욕하는 것 같아서 많이 불안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그게 너무 불안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했다. 나는 관계 망상, 피해망상으로 인한 정신병적 초조 및 자살에 관한 생각으로 바로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병사에게 입원하자고 얘기했는데, 병사는 자꾸 주저하는 것이다. 자신이 입원하면 부모님이 여기까지 와야 하는 상황이 자신이 원하는 건 아니고, 부모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거 같고, 어쩌고저쩌고...
얘기를 듣다 듣다 결국 화를 냈다. 사실 이런 환자에게 화내면 안 된다. 가뜩이나 자존감이 쪼그라들어서 관계, 피해 사고가 생겼는데, 치료자마저 화를 내버리면 이 세상에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을 거다. 그러면 더욱 절망에 빠질 거고. 큰 실수를 했다. 이 친구를 입원시켜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걸까? 내가 있는 병원에 입원하는 건 아니니까 그건 큰 압박은 아니었다. 나는 그 친구의 초점이 자꾸 자기가 아니라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마음에 안 들었던 거 같다. 그래서 화냈던 건데 스스로 그렇게 받아들이기 싫으니까, ‘중요한 걸 다시 짚어줘야겠다’라는 나름의 선의로 포장했던 것 같다. 초점이 자꾸 본인에게 있지 못하는 것도 증상이었을 수 있는데. 그 친구의 말이 길어지는 만큼, 진료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한몫했던 거 같다.
초점이 너무 본인에게만 맞춰져 있어도 문제지만, 너무 본인에게 안 맞춰져 있어도 문제다. 본인만 생각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진절머리 나게 만든다. 너무 남들만 생각하는 사람은 본인이 괴롭다. 안 힘들면 다행이지만. 적절한 선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도 본인이 할 수 있는 만큼이 아닐까? 결국은 자존(自尊)의 문제이다. 본인을 잃지 않으면서 상대를 생각하는 것은 참 어렵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각자에게 맞는 적절한 선을 찾기를, 그 과정이 너무 괴롭지 않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