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in MRI 소감문
#20230821 #뇌 #MRI
내 뇌를 본 느낌은 되게 묘했다. 수련하면서 환자들의 뇌 MRI를 몇몇 보았지만,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내 뇌 MRI라고 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살면서 자기 뇌를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보고 있는 각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서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유체이탈을 해서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내 몸 안을 들여다본다는 게 섬뜩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 잘 컸다고 대견하기도 하고. 문득 칼 세이건이 우주를 향해 가는 보이저호를 돌려 지구를 보았을 때의 느낀 바가 떠올랐다.
...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곳이 우리의 집이자, 우리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했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점 위에서 존재했고, 인류의 역사 속에 존재한 자신만만했던 수천 개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경제체제가, ... ,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들, 엄마와 아빠들, 그리고 꿈 많던 아이들이, 발명가와 탐험가, 윤리 도덕을 가르친 선생님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슈퍼스타”나 “위대한 영도자”로 불리던 사람들이, 성자나 죄인들이 모두 바로 태양 빛에 걸려있는 저 먼지 같은 작은 점 위에서 살았습니다.” ...
『창백한 푸른 점』 中
나는 나의 뇌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나의 모든 인식과 경험, 배운 것이, 기억이, 감정이, 판단이, 움직임이, 생명이 다 여기에 있구나. 저게 내 뇌이자 나 자신이구나!”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으로 드나들 수 있는 문이 따로 없다면, 내 무의식 전부도 이 안에 있다. 이 2kg의 장기가 뭐라고! (내 전생의 습(習)과 업(業)은 어디에 있을까? 영혼을 따라오는 거라 여기엔 없나?)
전반적으로 빵빵하게, 나이에 맞게 위축된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허혈이 있었던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sagittal view에서, corpus callosum body에서 genu로 넘어가는 부분이 조금 좁아 보였는데, 이 또한 다른 해부학 그림에도 유사하게 묘사되어 있기도 해서 이상한 건 아닌 듯하다. 딱히 비스듬하게 찍은 거 같진 않은데, Lt occipito-parietal lobe이 더 큰 건지 midline이 아주 약간 밀려 있었고, 그만큼 Rt 3rd ventricle이 Lt보다 좁았다. 좌뇌가 크다는 뜻일까? 좌뇌가 주로 이성을 담당하니, 그래서 내가 T인가? 근데 전두엽 쪽은 공평하게 반반이고 뒤쪽만 그런 거라 큰 의미는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