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질풍전 시작 또 한 명이 죽는다.
그리고 또 한 번 개 같은 사건이 발생한다.
우리 엄마 보험금 1억을
외삼촌이 주식으로 날렸다.
47년을 살다가 떠난 대신 우리에게 남겨진
엄마의 목숨값 1억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돈
하지만 나에게는 엄청난 큰돈
엄마를 잃은 대가로는 적지만
내가 혼자 살아가는데 첫 디딤돌이
되어줄 만큼은 될 것 같았다.
이렇게 나 자신을 위로하며
엄마의 죽음 따위는 슬프지 않았다.
| 그런데 그 목숨값을 외삼촌 그래
| 엄마의 남동생
| 엄마의 죽는 그 순간, 임종을 같이 본
| 그 새끼가 1억을 날렸다.
내 신분증, 도장을 몰래 훔쳐
인출해서 다 날린 거다.
어디 드라마에 나오는 소재일까?
내가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맞다, 나에게 행복한 건 사치지.
나는 행복하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덜 불행하기 위해 사는 것이지
졸업을 앞두고 엄마 목숨값도
날린 상태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생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생각한 그때,
우연처럼 혹은 운명처럼
태국 가이드를 하던 28살 선배가 나에게
다가와 태국 가서 함께 가이드를 하며 돈을
벌어보자고 한다.
"돈독이, 너 인상이며 말투며 이런 거 보면
분명 돈 벌 수 있다. 떠나자"
한국에서 월 200-300만 원 번다고 인생 안 달라진다.
가면 너 나이 26살에도 월 400-500만 원은 그냥 벌 수 있다.
체력만 있으면 된다.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한국에 있으면 외삼촌을
죽여버릴 것 같아 마음도 추스를 겸 태국가이드행을
택했다. 돈도 벌며 삶에 변화를 줘보자!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첫 사회생활을
정글 같다던 태국가이드 생활로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월 400-500만 원을 번다던 건
최소 1년은 지나야 했고,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비상식들적인 행동들이 일어났다.
그래도 버텼다. 나는 버티는 건 잘하니까
그렇게 전쟁 같고 악몽 같던 태국 생활도 적응해갈쯤
정확히 1년 후 20xx 12월 4일 오전 4시
나에게 돈 버는 법을 알려준 학교 선배이자 가이드 선배
태국 생활을 시작하게 해 준 선배
나와 동고동락을 하며 같이 룸메이트를 했던 선배
그 29살 선배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
그렇게 한 사람이 또 죽었다.
2번째 죽음을 겪은 후
선배는 先배답게 먼저 떠났다.
죽은 자는 떠났고,
왜인지 모르지만…
또 나는
.
.
.
살아버렸다.
『불행팔이소년: 나는 이렇게 살아도 살아버렸다』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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