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에 빠질 수 없는 김밥, 그 김밥에 한이 맺힌 나
나는 소풍 가기 전날이면 그 어린 시설에
전쟁이 났으면 했다.
전쟁이 나면 소풍을 안 가니까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소풍이 왜 싫었을까
그 이유는
| 김밥 때문이다. 그놈의 김밥.
이렇게까지 김밥에 애증이 생긴 이는
첫 소풍 때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첫 소풍을 가기로 한 전날이었다.
한국민속촌으로 소풍을 간다고 하는 날
가정통신문에는 준비물에 '도시락'이라고
적혀있었다.
| 도시락.
도시락이라는 단어를 보고 나는
어떻게 할지 몰랐다.
학교를 가면 그나마 급식을 주는데
도시락을 싸오라니
그나마 TV에서 보니 김밥을
싸간다고 봤던 기억이 있었다.
그래서 학교가 끝난 후 동네 김밥집을
찾아다녔다.
그때는 24시간 김밥집이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생긴
김밥나라, 김밥천국 가게들이 있었고
오히려 98,99년도에는 압구정김밥이라고
불리는 무려 한 줄에 4천 원이나 하는 김밥집이 있었다.
겨우겨우 모은 4천 원으로
김밥집으로 가서 김밥 1줄을 주문했다.
그렇게 나무젓가락과 김밥, 단무지를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숙제였던
도시락이 해결된 것이다.
다시 소풍이 너무 가고 싶었다.
그래서 파란색 가방 안에
준비물을 다시 챙겼다.
알림장, 연필, 지우개,
비상연락망 종이
명찰
| 그리고 나의 소중한 김밥
다 챙긴 후 행복한 마음으로
까먹지 않기 위해 문 앞에
두고 그날 행복하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떠 대충 세수만 하고
가방을 바로 메고 학교에 갔다.
다 함께 큰 버스에 타 소풍을 가니
너무나도 행복했다.
매일매일 소풍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풍시간은 순식간이었다.
벌써 12시가 됐다.
선생님은 조를 나눠줬다.
6인 1조로.
그렇게 6명이서 둥글게 앉아
서로의 도시락을 꺼냈다.
아이들은 알록달록 도시락에
예쁜 김밥을 꺼냈다.
나는 압구정김밥 포장지를 꺼내자
옆 친구가 말했다.
"돈독아, 너는 왜 엄마김밥이 아니야?
엄마가 없어?"
| 악의 없는 8살 어린아이의 순수한 질문이었다.
| 그 말에 나는 칼로 가슴이 쑤셔진 듯 아팠다.
"엄마, 늦잠 잤어"라고 둘러댄 후
얼른 먹고 자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김밥을 한 점 들었다.
| 그 순간 김밥에서는 시큼한 시금치 쉰내와
| 오이가 상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냄새가 심했는지 건너편 친구가 말했다
"돈독아, 너 김밥에서 쓰레기 냄새나"
이것도, 악의 없는 8살 어린아이의 순수한 말이었다.
2번 칼에 찔린 느낌이었다.
엄마는 없어도 자존심은 있었는지
나는 그 상한 김밥을 우걱우걱 씹어먹었다.
"이거 상한 거 아니야 봐봐
맛있는데"라고 말하며
아직도 그 쓰레기 같은 식감이 생생하다
시금치 쉰내, 오이 썩은 내와 밥의 질퍽함
그렇게 한 줄을 다 먹고
나는 오후 소풍 일정을 못한 채
배탈이 났다.
| 그날 나는 똥싸개로 소문이 났다.
| 그 시절 아이들답게
그 이후, 나는 소풍날이면 전쟁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상한 김밥을 먹기 싫어서
문득 편의점에서 여러 가지
김밥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는 김밥을 고를 수 있다.
참치김밥, 불고기김밥, 야채김밥...
어떤 김밥이든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다.
그 8살 아이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4천 원짜리 상한 김밥이 전부였다.
| "이제는 김밥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 김밥 한 줄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이렇게 또 김밥을 바라본 채
.
.
.
살아버렸다.
『불행팔이소년: 나는 이렇게 살아도 살아버렸다』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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