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만을 바꿀 수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각자의 결핍과 궁핍을 해결한 채 혹은 해결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바로 나의 이야기다.
이번 주 수많은 미팅과 외근을 하며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러면서 늘 듣던 이야기지만 유독
이번 주는 나의 이미지에 관한 말들이
맴돌았다.
여러 가지 키워드가 있겠지만
깔끔한 인상, 좋은 피부, 가정적인 집안에서 자란
막내, 밝은 에너지 등등.
하지만 사실 나는 절대로 깔끔할 수도, 피부가 좋을 수도 없고
심지어 파괴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이미지를
만들기까지 거의 10여 년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과거의 글에도 적었지만,
매일 명상과 확언하며
나 자신을 다스렸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2가지다.
첫째,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나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문득 알고리즘에 뜬 영상처럼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더라도
한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 심호흡을 하는 것이다.
행동은 간단하지만 하기 정말 힘들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보호자가 하도 많이 바뀌니 뭐가 정답인지 모를 때,
"아하, 나는 엄마가 3명이니 좋은 점만
뽑아서 가정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키가 작아 서러울 때,
"아하, 키가 작으니 어디서든 앞장설 수 있겠다.
덕분에 어디서든 눈에 띄면 되겠다."
조금만 무리해도, 숨이 안 쉬어질 듯 아플 때,
"아하, 남들보다 건강관리를 미리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을 때,
"아하, 이걸로 책을 쓰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구나."
수없이 나의 태도를 바꿔본다.
나의 결핍과 궁핍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다.
둘째, 결핍과 궁핍이 내 삶의 원동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결핍과 궁핍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나는 그래서 행복할까?
사실 가장 행복한 건 결핍과 궁핍이 없는 상태다.
그러면 태도를 달리할 필요가 없다.
누구나 결핍과 궁핍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깊이는 다 다르다.
가벼운 결핍과 궁핍을 바랬지만
그렇지 못하니 태도를 바꾼 것이다.
저마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듯이
나는 결핍과 궁핍을 원동력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꿈이 있다면
나와 같은 결핍과 궁핍이 있는 사람들에게
거창하게 "나처럼 살면 된다" 이런 식의 허상이 아닌
"이런 길도 있어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어요."
라고 말한다면 조금이나마 결핍과 궁핍이
덜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오늘도 결핍과 궁핍을 원동력 삼아
살아버렸다.
『불행팔이소년: 나는 이렇게 살아도 살아버렸다』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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