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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JUNG Sep 23. 2019

나의 검도 이야기(2)

미국에서 검도 수련

    한국에서 검도를 수련 하던 중에 미국 유학을 가게되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유학가서 해야할 공부 걱정 만큼 검도를 지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도 컸다.   한국에도 검도장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미국에 검도장이 얼마나 있을까하는 걱정과  그렇다고 검도유학을 가는 것이 아니므로 수련 할 검도장 위주로 학교를 정해서 갈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한국을 떠나기전 장에서는 환송회를 열어주셨다.  관장님은 친히 귀한 흑단 목검 셋트를 선물로 주시며 유학중에도 검도를 하면 좋겠다 말씀을 주셨다.  그러시며 내가 유학을 가는 버지니아, 워싱턴 D.C. 지역을 들으시고는 에게 단비 같은 소식을  전해주셨다.  그것은 바로 관장님의 제자가 미국 이민을 갔고 그지역에 도장을 얼마전 부터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제자분은 한국 검도 국가대표를 지낸 장순칠 선수였다.


     장순칠 관장은 국가대표 시절 손목치기가 뛰어난 선수였고 도장을 열기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간것은 아닌데 결국 버지니아에 한국 검도장(US화랑관)을 개관 한지 얼마 안되었다는 말씀이셨다.   나 역시 유학가는 지역에 검도장을 미리 찾아보고 있었기에 그 도장의 존재를 확인 했었지만 한국 관장님의 제자분이고 더욱이 한국 국가대표 출신의 뛰어난 선수였다는 말에 한껏 기대가 되었다.


     미국에서 검도를 다시 시작한 것은 한학기의 시간이 지난 후 였다.  살고 있는 곳에서 도장까지 막히지 않는 하이웨이를 타고 30분 이상 운전해야 하는 꽤 거리가 되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운동을 하게 되었다.   


     유학 기간 동안 장순칠 관장 도장에서의 검도 수련은 지금까지 나의 검도관에 영향을 줄 정도로 강렬했다.   특히 장관장의 가르침 중에 20여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뚜렷이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다.   그 중 한가지는


" 검도가 좋아서 열심히 수련 하는 여러분들은 비록 선수출신이 아니더라도 결국 끝에가서는 선수 출신 보다 검도를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검도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

 

     또한 장관장은 도장 유단자들 특별히 훈련 시켰다.  자신의 검도 경험과 노하우를 미국 도장의 수련생들에게 헌신적으로 전수를 해주었다.    유단자들과의 수련 시에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내 머리속에 각인되어있다.


"칼은 무정(無情)입니다...  


이것는 상대와 칼을 뽑으면 비록 피를 나눈 형제라도 반드시 상대를 베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칼을 뽑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고 상황을 다스릴 수 있어야 진정한 검도를 하는 사람입니다"


      말은 당시 내가 품고 있던  검도에 대한 의문점과 답답함에 대한 명쾌한 해답이었다.  당시 미국 도장에서는 한국과 다르게 일본 검도인들과 대련을 할 기회가 적지 않았다.  특히  일본 주재원들과 외교관들 중에 검도 고단자들이  장관장의 도장에 와서 대련을 하곤 했다. 나는 무엇보다도 일본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의 검도 수련 방식과 관점의 차이 특히 실제 대련 시 나타나는 차이점 등에 대해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전 마지막 검도 수련 후 장순칠 관장님(오른쪽)과 함께

       하지만 장순칠관장의 "칼은 무정(無情)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는 나의 모든 갈증을 풀어주었고 이는 나의 검도 수련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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