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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JUNG Sep 20. 2019

나의 검도 이야기(1)

나의 무술수련 편력기

     검도(劍道) 라는 무도(武道)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마도 일본 느낌('왜색' 이라고 까지는 표현을 하지 않겠다)이 강한 운동 그리고 머리부터 상반신을 감싼 이상한 보호구(검도에서는 '호구'라고 부름)를 입고 기묘한 기합을 지르며 대나무칼(竹刀)로 칼싸움(대련)을 하는 정도 일 것이다.   


     사실 검도에서 일본을 빼놓고 이야기를 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글을 비롯해서 내가 쓰는 검도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검도와 일본 관련 내용은 역사적이나 정치적인 감정 혹은 내용과는 상관이 없이 순수한 개인의 운동과 무도(武道) 수련의 경험 과 관점 임을 미리 밝힌다. 




     검도를 처음 접하고 시작한 것이 벌써 30여년 전이다.   어려서부터 대부분의 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놀이 구기(球技)종목보다는 왠지 무술(武術)에 관심이 많고 좋았다.  이소룡 흉내로 쌍절곤을 휘드르고 성룡의 코믹스러운 쿵후에 열광을 했다.  대한민국의 남자들이라면 의례 배워야하는 것만 같은 태권도를 나도 초등학교때부터 배웠다.   대부분 초등학교때 배우다가 그만 두는 태권도였지만 나는 품띠를 따고 검은띠를 따고 중고등학교, 대학교 학창시절 그리고 군대에서까지 수련을 했다.   


       배우기 싫어도 강제로 해야하는 군대 태권도 역시 축구이야기와 함께 남자들의 군대 수다에서 빠지지 않은 이야기 거리이다.  반면에 나의 자발적인 군대 태권도는 조금 달랐다.   카투사(KATUSA)로 미군들과 함께 복무를 하였기에  다른 한국군 부대처럼 태권도가 필수 과목이 아니었다.  미군들의 기본 체력과목인 PT 만 열심히 하면 되었다.  PT는 2마일 러닝(3.2km), 푸쉬업, 싯업의 3가지 종목이며 이는 미군과 카투사의 체력 테스트 항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등학교때부터 수련을 했고 무술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카투사 복무를 하면서 태권도를 다시 하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다행히 부대 체육관에서 한국인 사범님이  태권도 클라스가 운영되고 있었다.   권도 강좌는 미군을 비롯 부대에 출입이 가능한 외교사절 등을 포함한 외국인을 위한 것 이었으며 일정의 수련료도 매달 납부를 해야하는 수업이었다.


      태권도 클라스에 찾아가서 수련을 하고 싶다고 사범님께 말씀을 드렸다.  당시에 50대 초반이시던 사범님은 '허허' 하고 웃으셨다.   공수특전사 출신으로 이미 이 미군부대의 태권도장에서 20년간 태권도를 미군과 외국인들에게 가르치고 계신다고 했다.   50대라고는 믿기 힘든 탄탄한 몸으로 엄청난 체력 운동을 중심으로 태권도를 가르치시고 계셨다.  자신이 태권도를 미군부대에서 가르친 지난 20여년동안 카투사는 나말고 딱 1명이 왔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카투사는 채 2주도 나오지 않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카투사와 태권도는 왠지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 것 처럼 보였다.


     사범님은 내가 못미더운 듯 했지만 수련을 하는 것을 오케이 했다.  물론 나역시 수련비를 내고 등록을 하고 일과 근무시간이 끝난 후 저녁에 태권도를 했다.  입대전에 이미 태권도 3단 였던 나는 그 도장에서 사범님을 제외한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얼떨결에 새끼 사범님 역까지 하게 되었다.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미군 사병은 물론 장교, 군의관, 외교관 등 다양했다.   여성들도 남성 만큼 많이 배우고 있었다.   사실 미군들에게 카투사는 모범생 같은 이미지가 강했기에 그들 역시 카투사 태권도 수련생이 몹시 흥미로운 듯 했다.  


     특전사 출신 사범님이 지도하는 태권도는 엄청난 체력 운동을 동반한 수련이었다.   아무래도 성인으로서 태권도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이 많았으므로 고난의 기술적인 발차기보다 엄청난 체력 운동과 기본적인 발차기와 품새 등이 수련 중심 이었다.   국인들과 수련을 하면서 나는 그들의 진지한 수련 태도에  감명을 받고 나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를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사범님이 나비뛰기 500번,  1000번 그리고 팔굽혀펴기 100번, 200번을 하라고 하면 남녀 가릴것 없이 수련생들은 땀을 비오듯이 흘리며 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 숫자 만큼의 갯수를 정확히 채우는 것이었다.   힘들면 숫자를 막 뛰어 넘거나 빼먹으면서 하는 것이  요령껏 운동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일병 때 등록한 미군부대 태권도는 사범님이 놀랄정도로 제대 할 때까지 지속 하였다.  물론 내가 수련할 당시나 그 후에도 다른 카투사는 더이상 오지 않았다고 한다.   카투사 복무중에 태권도를 수련하면서도 다른 무술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스티븐시걸(Steven Seagal)이 주연한 '죽음의 표적(Marked For Death)'이 인기를 끌었다.  그 영화에서 스티븐 시걸이 화려하게 선보인 싸움기술은 아이키도(Aikido, 合氣道)라는 일본의 무술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화려한 발차기 중심의 합기도가 있기는 했지만 회전운동과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며 던지기, 꺾기등의 관절기가 중심인 아이키도와는 조금 다르다.    


     사실 아이키도라는 무술에 대해서 그전에 조금씩 알고 있던 차에 스티븐시걸의 영화는 내 무술관심에 불을 당겼다.   하지만 군생활 중이었고 이미 부대에서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었고 더우기 아이키도를 한국에서 배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부대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무술서적들 중에서 아이키도 서적을 여러권 찾을 수 있었다.  당장 그책들을 빌렸다.   태권도 수련 후에 방에서는 이제 책을 보며 한동작 한동작 아이키도를 해보았다.   


    부대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카투사는 3명이 한방을 사용한다.  방의 최고 고참을 방장, 중간 계급자를 방중, 제일 쫄병을 방쫄이라고 불렀다.   다행히 나는 방장이었다.   내방의 방중, 방쫄은 나의 아이키도 연습상대가 되었다.   하지만 책속 사진으로 무술을 배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우수꽝 스러운 일이었다.  점점 방중과 방쫄이 잠자기 전까지 방에 들어오지 않는 일들이 많아지고 나서야 책으로 수련하는 아이키도를 그만 두었다.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마음속에는 검도를 배우고 싶었다.  왠지 멋있어 보였다.   중학생때도 검도를 배우고 싶어서 수소문을 해보니 당시 서울 시내에는 검도 도장이 6개 밖에 없다고 했다.   아쉽게도 그 도장들은 중학생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곳은 없었다.  

 

      다행히 고등학생때 학교 근처 검도장이 있는 것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호구를 입고 죽도로 대련을 하는 대한검도가 아닌 목검 수련 중심인 해동검도였다.   꿩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어쨌든 등록을 다.   그때부터 한동안 목검으로 촛불 끄기,  명함으로 나무젓가락을 자르기 그리고 사극에서 본듯한 검술 수련을 꽤나 진지하게 하였다.  그 도장은 나중에 연속극 '무풍지대'로 일약 유명해진 나한일 관장이 운영을 하던 곳이었다.   


     마침내 죽도와 호구를 쓰고 수련하는 대한검도를 시작하게 된 것은 이러한 긴 과정을 거친 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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