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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JUNG Mar 05. 2020

사스와 코로나 바이러스

바이러스와 글로벌 비즈니스

   2019년 12월에 발생한 중국 후베이성(湖北) 우한(武漢)발 바이러스, 일명 우한 폐렴은 전세계에 유례없는 공포심을 일으키며 경제활동은 물론 일상 생활에도 많은 제약을 주고 있다.  현재 우한폐렴 바이러스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가 되었지만 2003년 중국 광저우와 홍콩에서 발생한 호흡기질환인 사스(SARS) 역시 당시엔 전세계를 그간 경험하지 못한 전염병 공포로 몰아넣었었다. 홍콩에서만 약1,800명이 감염되었고 302명이 사망하였고 전세계적으로는 약8,000여명의 감염과 900여명이 사망을 하였다. 특히 같은 아시아지역인 우리에게도 사스의 공포는 대단해서 중국 및 홍콩에 대한 여행 자제와 결국 회사에서도 출장자제령이 내렸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템에 구매업무를 맡게 됨에 따라 나는 홍콩, 중국 등 공급선들과의 첫인사 및 미팅을 위해 출장을 진행하였다.  삼성물산의 경우 수많은 해외 지법인이 있고, 건전지 사업에 대한 구매지원은 홍콩법인에서 이미 삼성에서 10여년 넘게 일을 하고 있던 노련한 현지 담당자가 지원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아이템과 거래처와 만들어갈 사업에 대한 각오를 다지며 기존 구매 및 사업내용 분석을 하고 각 공급선마다 홍콩 현지직원과 함께 찾아가서 나에 대한 소개와 앞으로의 협력을 부탁하는 출장을 하게 됐다.  이미 본사와 홍콩직원을 통해 주요 거래선들의 성향, 제품 특징, 구매가격 및 구매물량 등에 대해서 1차적으로 리뷰를 마친 후였기에 나는 앞으로의 관계를 위해 직접 인사를 진행한 것이다.


    내가 자료와 전언 등을 통해 들었던 홍콩의 공급선에 대한 내용은 약간 부정적인 중립 의견이었다. 사전리뷰에서도 이 업체는 품질은 우수하나 공급가가 타 공급선들에 비해 비싸고 우리에게 협력적이기 보다는 소위 좀 뻣뻣하다는 업체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업체의 실직적인 결정권자가 여성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중화권(中華圈) 문화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대외적인 의사결정라인과 실제가 다르다는 것 정도를 염두에 두고 홍콩으로 떠났다. 현지에 도착, 업체 관계자들과 안면을 트는 가벼운 수준의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그 업체 담당자들이 이제 자신들의 상관인 그녀를 모시고 오겠다고 하며 나갔다.

호텔방에서 내려다본 홍콩

    잠시 문제의 여성 상관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스테레오 타입일 수도 있겠지만 전형적인 중화권의 여장부 같은 모습이었다. 짧은 단발머리 그녀의 첫인상은 여성으로는 다부진 느낌이었다. 나는 새롭게 구매업무를 맡게 되었고 향후에 잘 해보자 라는 우선은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그녀에게 서도 우선은 형식적인 답변이 올 것으로 기대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첫마디부터 불만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삼성에 대한 불만, 기존 부서와 담당자들에 대한 불만 등 약 1시간에 걸쳐서 초면에 이야기하기에는 굉장히 거북하고 낯뜨거운 불만을 작정하듯이 내뱉았다. 이에 나는 ‘이건 뭐지?’라는 생각과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 심한 모욕감까지 들었다. 아니 어떻게 잘해보자고 인사를 하러 온 담당자에게 첫 대면부터 거의 욕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할 수가 있나? 라는 당혹감에 잠시 흔들렸던 멘탈을 가까스로 진정을 한 뒤 차분히 그녀가 쏟아내는 불만을 되새겨보니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들이 분명히 있었다.


    이를 테면 그녀가 격정적으로 쏟아낸 불만은 ‘삼성을 신뢰할 수 없다’ ‘개런티한 구매 물량에 대해서 한번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우리에게 오퍼한 가격은 그만큼 사겠다고 이야기해서 준 가격인데 가격만 낮게 받고 물량은 턱없이 적게 준다’, ‘거래선 오더로 공급선에 물량을 줘야 할 때면 자신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공급선과 다시 가격 경쟁을 붙이는 등 기본 상도의를 지키지 않는다’, ‘삼성의 수출하는 담당자들이 개별적으로 구매를 진행하면서 각자 다른 스팩, 제품 디자인 등 요청을 하기에 자신들은 패키지 등 부자재의 낭비가 너무 심각하다’, ‘디자인 변경을 해외 거래선이 원하는 대로 바꿔 주면서 기존 공장에 남아 있는 부자재 등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한다’. 더욱이 ‘구매 담당자를 시도때도 없이 바꿔서 이전에 했던 약속과 조건은 자기 책임 아니라고 한다’. 욕설에 가까운 격정적인 토로가 한동안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들어보니 객관적으로 보면 하나같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 우리가 이렇게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그녀가 토로한 기존의 거래는 내가 추구하고 진행하고 있던 구매방식에도 맞지 않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무례한 태도에 대해서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었지만 미팅 후에는 분명한 오기로 바뀌었다. ‘그래 내가 당신을 설득시키고 내편으로 만들 고야 말 것이다’ 라고 결심했다. 한편으로 본사에서 왜 이 공급선을 까탈스럽고 뻣뻣하다고 이야기하는지도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보통 중국본토의 공급선들은 구매자가 어떤 요구를 하면 정말 큰 무리가 없으면 그 앞에서는 거의 ‘노’라는 대답을 하지 않지만 최종 결과물에 대해서는 실망과 약속을 어기는 일들이 많았다. 반면 이 공급선은 우리가 제시하는 조건들에 대해서 분명하게 Yes, No를 표명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의견을 분명히 했기 때문에 구매담당자에게는 거북한 업체임에 분명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하드 했던 첫 인사후에 본사로 복귀한 나는 이 공급선과 그간 내가 담당하지 않았을 때 발생했던 우리측의 책임이 있던 묵은 미결 건 들에 대해서 특별품의를 진행하여 모두 처리를 해주었다. 기존 담당자들은 굳이 그것을 해결해줄 필요가 있냐고 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비즈니스 관계인 신뢰를 쌓기 위한 당연한 첫걸음이었다. 이 공급선은 본사가 홍콩에 있지만 중국 여러 곳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홍콩은 물론 각 중국공장을 지속 방문하면서 신뢰를 쌓았다. 그리고 그 거래선의 결정권자인 여성 책임자와 매번 협상과 담판을 지었다. 나는 오히려 기존 구매담당들이 요청하지 않았던 파격적인 구매가와 지원을 당당하고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물론 나는 그들이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물량의 오더를 안정적으로 주기로 약속을 하였고 그것을 지켜 나갔다.


    그렇게 이 업체와의 신뢰관계를 하나씩 쌓아가고 있던 무렵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됐다.  바로 사스(SARS)가 발생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스를 아랑곳하지 않고 매달 홍콩과 광저우 출장을 지속 진행했다. 홍콩의 공급선에서도 사스 공포가 만연한 홍콩 자신들의 회사에 출장을 오는 것은 나 밖에 없다고 걱정을 해줄 정도였다. 나는 한국인은 김치를 먹어서 사스에 끄떡없다는 호기 아닌 호기를 보이며 미팅과 협상을 위해 지속 방문했다.  초기에는 나를 믿지 못하는 눈치가 있었으나 이러한 나의 열정(무모함?)과 내가 한 약속 그 이상의 구매 오더를 안정적 주는 것 등에 서서히 마음을 열었고 결국 이 공급선의 당시 최대의 안정적인 공급 파트너가 되었다.  비즈니스의 시작이 그 어느 거래처보다 치열한 기(氣)싸움으로 시작됐던 이 홍콩의 공급선과 결정적으로 친밀함이 형성됐던 계기가 바로 사스(SARS) 사태였던 것이다.  ‘거친 불만’이 ‘강한지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은 글로벌 현장에서도 통하는 진리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re:Global(다시, 글로벌)' 저자 정해평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무모한 출장을 자랑하거나 장려하는 것이 아님을 독자들은 잘 이해하리라 믿는다.  개인의 건강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어려운 시기와 불행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시기를 어떻게 대처하고 행동하는 가에 따라서 향후 비즈니스는 물론 개인간의 관계에도 큰 변화를 맞을 수 있다.


    참고) 국제 바이러스 분류위원회(ICTV)는 2020년 2월 11일 코로나19의 병원체에 SARS-CoV-2라는 이름을 제안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는 이 바이러스가 2003년 유행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비슷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제 공식적으로 WHO는 2020년 2월 11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공식 명칭을 'COVID-19'로 정했고, 여기서 'CO'는 코로나(corona), 'VI'는 바이러스(virus), 'D'는 질환(disease), '19'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병이 처음 보고된 2019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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