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래옥에서 평양냉면을 5~6살 무렵부터 한그릇씩 온전히 먹어서 어른들을 놀래켰다고 부모님은 내가 냉면을 먹을 때마다 말씀을 하시곤 했다.
물냉면뿐만 아니라 회냉면, 우동, 소바, 라면, 짜장면, 짬뽕 그리고 스파게티까지 왠만한 면음식은 밥보다 더 좋아한다.
면은 싫고 온전한 한끼 식사는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나에게 면은 온전한 한끼 역활을 충분히 해준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국수 이야기다. 국수 중에서도 한국이 아닌 미국 유학을 가서 첫 경험한 땅콩국수 이다.
새로이 학교에 입학하게된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과 기존 현지 한인학생들과의 인사를 겸해서 만난 자리였다. 간단한 상견례 후에 식사를 하러 가자고 했다.
그리고 여기 유명한 '땅콩국수집'으로 가자고 하며 우리를 데리고 갔다. 도착한 곳은 허름한 베트남 식당이었다. 과연 땅콩국수 맛은 어떨까 궁금하던 차에 주문후 나온 국수는 맑간 고기국물에 담긴 하얀 쌀국수와 테이블에는 접시 한가득한 숙주와 한국에서는 생소하던 풀잎들이었다.
시키는대로 숙주와 이상야릇한 풀잎을 국수에 가득 넣고서 식사를 시작했다.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쌀국수의 식감이 좋았다. 그리고 육수의 맛은 어딘가 익숙한 소고기 국물맛이었다. 그리고 뜨거운 국물에서 갓 익혀지는 듯한 숙주의 향 그리고 시키는 대로 뜯어 넣었던 풀잎의 맛이 느껴졌다. 간간히 씹히는 고수(차이니즈 파슬리)의 이국적인 맛이 새로웠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땅콩의 맛은 나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새로이 도착한 학생들은 몇 젓가락을 먹은 후에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마주보았다. 그들도 분명 땅콩 맛을 못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결국 한학생이 현지 선배 학생들에게 땅콩 맛이 안난다고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예상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땅콩 국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국수에는 땅콩은 전혀 안들어 가며, 땅콩국수라고 그 동네 유학생들이 부르는 이유는 이 식당이 유학생들을 포함해서 한국 교민들에겐 꽤나 인기있는 곳이고, 어느 누군가가 체형적으로 한국사람들 보다는 좀 왜소한 베트남 사람들(종업원들)을 장난스럽게 지칭하면서부터 그곳 한국인들, 특히 유학생들 사이에선 땅콩국수(집)으로 불린다는 것 이었다.
그날 이후로 땅콩국수집은 나를 비롯한 새로이 입학한 한국학생들에게도 역시 단골집이 되었고, 학교가기전에 땅콩국수집에서 만나서 한그릇 먹고 가는 것이 일상처럼 되기 시작했다.
내가 먹고 오지 않은 날에도 누군가 다른 한국 유학생이 땅콩국수를 먹고 수업에 오면 그 특유의 냄새가 진동을 했기에 금방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그 향기롭지 못한 냄새를 맡게되면 희안하게도 수업 후에 땅콩국수집으로 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