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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JUNG Apr 30. 2019

아르헨티나, “정대리, 당신 수출 물량이 젤 크다”

종합상사맨의 남미 해외영업 에피소드

    “따르릉, 따르릉” 


    곤히 단잠을 즐기던 일요일 이른 아침에 핸드폰 소리에 잠을 깬 나는 전화를 건 상대방이 감사팀장임에 달콤한 주말의 늦잠이 확 달아났다. 


    “정대리, 지금 정신 있나? 아직도 자고 있을 때인가?” 


    “어제 아르헨티나에 디폴트가 선언되었는데, 자네가 물산에서 아르헨티나로 젤 큰 금액 수출 중인걸로 파악되었는데, 빨리 회수해!”


    아니 일요일 이른 아침에 자고 있는 게 당연한데, 갑자기 감사팀장의 전화를 받고 질책 아닌 질책을 받으니 기분이 상쾌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아르헨티나 거래선은 내가 그간 공들여서 키운 파트너였고 이번 오더는 그동안 그 거래선에게서 받았던 수주중에 가장 큰 오더였었다.  근데 그 오더가 삼성물산에서 당시 아르헨티나와 거래하던 최대 금액이라니 한편으로는 놀랍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사실 어려운 경제상황, 불안정한 정치환경, 일반적인 국제룰과는 다른 상관습, 물리적으로 먼 거리 등 남미의 국가들과 거래를 하는 것은 다른 어느 국가들 보다 어렵고 힘든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사인들이 아닌가.  당시 내가 속한 사업부는 삼성물산안에서도 중남미 사업을 가장 역동적으로 진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 디폴트가 선언된 이상 아르헨티나에서 국외로 외화 송금은 불가능 하게 되니 내가 수주한 물량의 잔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것은 곧 사고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 거래선의 기존 수주건들에 대한 잔금을 받아야 하는데 이 또한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허탈했다.  그동안 힘들게 공들여 키운 거래선이 이제 영업규모를 나와 서로 약속한 규모로 막 확대하려는 참에 디폴트라니… 그러나 현실은 이미 수주를 해서 공급선인 대만 공장에서 생산이 된 후 아르헨티나로 항해가 진행중에 있던 4개의 컨테이너 오더 물량을 디폴트가 선언된 아르헨티나로 계속 보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월요일부터 나는 칠레, 브라질, 파나마의 다른 거래선들과 긴급히 협의를 하여 결국 그 물량들을 어렵게 판매하였고 4개의 컨테이너들은 아르헨티나가 아닌 전매가 확정된 각각의 국가로 환적을 시켜서 문제를 해결하였다.  지난일을 이야기하니 간단한 듯하지만 당시 이 과정들은 당시 중남미 담당이던 내 속을 까맣게 태웠던 일이었다.  이렇게 급하게 전매를 추진하는 경우는 당연히 기존 판매가 대비 일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폴트가 선언된 국가로 물건이 가고 잔금을 받지 못하는 사고가 나는 것 보다는 나은 해결 방안이었던 것이다.


    전매가 해결된 후에 나는 아르헨티나로 긴급히 날아갔다. 이번엔 그 거래선에게서 남아있는 그전 수주건들의 잔금을 직접 수취하기 위해서였다.  그 잔금들은 국외 송금이 막힌 상황이었기에 내가 직접 아르헨티나로 가서 수금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거래선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디폴트 상황에서도 거래선은 잔금 지급을 회피하거나 숨지 않고, 출장 간 나에게 백달러짜리로 지폐뭉치로 잔금을 주었다. 

    당시에 아르헨티나 지사 역시 디폴트의 여파로 지사 운영비조차 본사에서 제대로 송금을 받고 있지 못했기에 잔금 중에 일부는 지사 운영비로 남겨주고 다른 국가로 이동하였다.  남미 출장의 경우 장거리와 출장 비용 또한 만만치 않기에 통상 남미출장을 가게 되면 여러 나라를 돌게 된다.  하지만 이번엔 가슴에 달러 현금뭉치를 품고서 브라질, 파라과이를 추가로 방문하고 복귀를 하여 본사에 무사히 입금을 하였다. 


    이 잔금 수취를 위해 아르헨티나 출장을 갔을 때 나는 다시한번 잘못된 국가운영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결과를 목격하게 되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엔 빈곤과 불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은행 앞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현금을 인출하려고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선진국 대열에 있던 국가였지만 그러한 옛 영화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과거의 멋진 건물들은 도색과 수리가 안되어 그 위엄을 잃고 흉물스러웠고 만일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닌 뉴욕이나 런던에서 걷고있다면 멋지게 느껴질 사람들의 표정도 더 암울하게만 느껴졌다.

   

    아르헨티나 헤프닝 후에 나는 한동안 부서에서 당시 거래선이름인 CURA(쿠라)와 내 성(姓)인 정을 합쳐서 ‘쿠라정’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게 되었다. 


're:Global(다시, 글로벌)' 저자 정해평 




    2001년 아르헨티나는 1320억달러 규모의 대외부채를 디폴트선언(채무불이행) 했다.   불행히도 아르헨티나는 2019년 현재 페소가치가 역대 최저치인 달러당 47.50페소까지 폭락을 했고 지난 12개월간의 물가상승률은 55%에 달한다.  올 10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포플리즘을 앞세운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前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르헨티나 경제 앞날은 더욱 어둡게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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