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혁신경영 사례 (중국- BGI)
미국에 일루미나가 있다면 중국엔 BGI가 있다. 원래 일루미나에서 장비를 사서 쓰던 이 회사는 자체 기술로 장비를 만들어 양적으로는 유전체 분석에 있어서 세계 1위가 되었다. 베이징게놈연구소의 영어 약자인 BGI는 중국의 유전체 분석 기업이다. 짧은 기간 보여준 기술력과 글로벌 역량 때문에 중국이 배출한 첫 번째 글로벌 생명공학 기업이라고 일컬어진다. 1999년 설립 이후 불과 20년 만에 세계 유전체 분석 장비 1/2을 보유하고, 분석량의 30%를 차지하는 이 분야 넘버원 기업이 되었다. 유전체 분석은 글로벌 의료계의 빅 이슈다. 정밀의학에 꼭 필요한 유전체 분석 기술에 있어 미국의 일루미나와 더불어 선도업체의 하나로 성장했다. 2020년 1월 현재 세계 병원 300개, 의료기관 3천 개와 거래를 하고 있다. 글로벌 20대 병원 중 17개가 거래 파트너가 되었다. 중국의 다른 연구소와 마찬가지로 국영 연구기관으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민간 투자를 받아 민간기업이 되었다. 민간기업이먼서 중국의 국가 유전자은행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인프라와 예산은 국가의 지원을 받는다. BGI의 단기간 동안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경영자의 리더십, 인재풀과 기술력, 글로벌 역량이 핵심 포인트다.
왕젠
BGI의 공동창업을 이끈 왕젠(Wang Jian)은 중국에서 중의학과 통합의학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텍사스, 아이오와, 워싱턴 대학에서 6년간 연구생활을 했다. 94년 귀국하기 전 시애틀에 중국 바이오의학 협회를 설립해 미국과 중국의 유전체 기술 교류 통로를 마련했다. 중국은 역사적인 세계 인체 유전자 해독 프로젝트(HGP, 1990-2013)에 미, 영, 불, 독. 일과 함께 유일한 개도국으로 참여했다. 중국의 대표기관 역할을 BGI가 했는데 그 씨앗을 심은 게 왕젠이다. 미국 체류 중 구축한 네트워크가 기반이다. HGP 프로젝트에서 중국은 1%의 과제를 맡았지만 이 프로젝트로 맺어진 인맥과 경험을 통해 BGI는 중국의 유전체 연구의 글로벌화의 기반을 닦았다. 본사가 베이징에서 항조우로, 다시 항조우에서 선전으로 이전했는데, 2007년 선전 이전은 성장의 큰 계기가 되었다. 선전 시의 지원, 비즈니스 친화 분위기, 민영화, 독립성 확보는 글로벌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신발공장을 개조한 큰 규모의 인프라, 6천 명 중 박사급 2천 명의 전문성, 평균 연령 30대 초반, 빌 게이츠 재단 협력, 세콰이어 캐피털 투자도 경쟁력 요소다. 게놈(유전체) 연구자이지만 사업가적 기질도 갖춘 왕젠 회장은 본인의 체력 관리는 물론이고 직원들의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생명공학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은 직원 자체가 움직이는 광고판이라고 직원들에게 당부한다. 사내 카페에서 구할 수 있는 유전자 진단킷을 활용해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질환은 예방하도록 권한다. 신생아의 유전질환 사전 진단, 파킨슨, 암 등이 그 예이다.
기술력
세계 최고의 유전체 분석량은 다량의 장비 덕분이다. 세계의 분석 장비 1/2을 갖춘 BGI는 미국 일루미나의 장비에 주로 의존했다. 일루미나는 세계 분석장비 70-80%를 점유하고 있다. 자체 장비 개발을 위한 기회를 2013년에 맞았다. 미국의 장비업체 컴플리트 지노믹스를 인수한 것이다. 세계시장 10%를 차지하는 유수기업이지만 경영악화로 매물로 나온 이 기업을 BGI는 1억 1800만 불에 인수했다. “코카콜라의 제조비법을 파는 것이다”라고 미국 산업계의 비판적 의견도 컸다. 일루미나도 입찰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BGI가 인수하게 되었다. BGI의 장비에는 BGISEQ 시리즈, MGISEQ 시리즈, 소형 DNBSEQ 시리즈가 있다. 컴플리트 지노믹스 기술을 기반으로 1차 The Revolocity라는 모델을 개발했으나 수준 미달이었지만 얼마 후 BGISEQ 모델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최신 MGI SEQ-T7 모델은 하루 60명 이상 전장 게놈 해독이 가능한 장비다. 일루미나의 최신작 NovaSeq과 거의 같은 데이터량, 2배 이상의 속도에 가격은 더 저렴하다. 가성비로 최고의 장비로 평가받는다. 소형 연구소용으로 개발한 DNBSEQ-E는 8시간에 1명의 해독 능력을 갖추고 있다. 가격은 최신 MGISEQ-T7 모델이 약 1백만 불(약 12억 원), 소형 DNBSEQ-E가 1만 2천 불(약 1천5백만 원)이다. 세계 인간 유전체 해독 프로젝트(HGP)가 완료된 2003년에 1명분의 해독에 13년, 3조 원이 소요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유전체 해독 기술의 발전 속도를 짐작할 수 있다. BGI의 장비 제조 기술력은 미국 기업 인수로 큰 전기를 마련했지만 자체 유전체 분석 능력은 수준급이다. 2002년 벼 게놈 분석, 2003년 사스 유전자 분석 및 검사 키트 제작, 2008년 아시아인 유전자 최초 분석(네이처), 2011년 독일 식중독 슈퍼박테리아( E.coli) 유전자 해독 발표(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등 국제 학술지에 2천 건 이상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글로벌 역량
세계 60개국 이상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BGI는 2010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에, 유럽 덴마크 코펜하겐에 첫 해외 거점을 마련했다. 2017년 서부연안 혁신센터(West Coast Innovation Center)를 시애틀과 산호세에 세웠다. BGI는 비즈니스 감각도 돋보인다. 신생아 다운증후군이 중국에서 줄어드는 통계가 있는데 BGI의 산전 유전자 검진(NIFT) 확대와도 관련이 있다. 상업적 자회사 역할을 위해 2017년 BGI Genomics라는 자회사를 상장시켰다. 장비 분야는 컴플리트 지노믹스 기반으로 MGI가 설립되어 맡고 있다. 3000 병상 규모의 BGI 병원도 추진 중이다. 의료 인력 양성을 위해 호주 퀸즈랜드 주 및 주 의료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2011년에 우수 지능 유전자 연구를 위해 인지 유전자 연구소(Cognitive Genomics Lab)를 설립해 미국 전문가들과 협업을 추진한 바 있다. 부정적인 여론으로 인해 중단되긴 했지만 유전자 관련 뭐든지 할 수 있는 BGI의 열정을 엿볼 수 있다. 2015년 실험 후 중단된 미니 돼지 유전자 조작도 그 예의 하나다. BGI의 부상에 대해 경계 여론이 적지 않지만 방어막 역할을 하는 글로벌 인맥과 자문단 덕분이다. 세계 최고의 유전자 석학으로 알려진 하버드 대학의 조지 처치 교수와의 관계가 그 예이다. 처치 교수는 최초 유전자 해독으로 노벨상을 받은 프레데릭 생거와 월터 길버트 박사의 제자이다. 병행 해독 방식을 연구해 차세대 해독 방식(NGS) 개발에 크게 공헌한 석학이다. 2007년부터 관계를 구축한 처치 교수는 중국과 미국 간 소통 창구 역할을 한다.
독특한 회사
BGI의 성장에는 기술력, 글로벌 역량과 함께 상업적 능력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인터넷을 통한 진단킷 판매 몰 Genebook 도 그중의 하나다. 한국 기업들과도 다양한 채널로 협력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사업 내용도 산전 태아 유전자 검진(NIPT, 비침습적 산전 기형아 검사), 유전체 시퀀싱, 장비 판매, 중국 시장 공동 개척 등 다양하다. 사업마다 담당하는 BGI의 자회사가 다르고 한국의 파트너도 다르다. 조지 처치 교수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BGI에 대해 복잡(sophisticated)하고 독특(unique)한 기업이라고 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