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은지 피디 Nov 21. 2022

산수유 열매를 구하는 심정으로

5일째 아이가 아프다.

다행히 코로나 결과는 음성인데 열이 계속 있고 무엇보다 거의 먹질 않는다.


정말 아기로 돌아간듯 돌 아기만큼 먹고 있다.

아침 세 수저, 점심은 귤 한 개? 이것도 겨우 달래서 먹는 수준이다.


오늘 아침 다시 찾은 소아과. 오픈 전 8시 40분쯤 갔음에도 이미 대기자 수가 9명이나 있다.

명품 매장 오픈런도 안 해봤는데, 소아과 오픈런이라니.


오늘은 출근도 포기하고, 아이를 봤다.

대낮에 낮잠 자는 아이 옆에 있으니 육아휴직 시절이 생각났다. 낮 시간 아기랑 나 말고는 아무도 없던 1년 반 동안의 시간.

사람의 소리라곤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 아니면 나의 혼잣말뿐이었던 시간.

그 시간이 평화롭기도 하고, 이유 없이 불안하기도 했다. 그러다 저녁에 신랑(사람)이 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오늘은 유치원도 태권도도 못 가고, 구몬 선생님만 와 계시다. 오늘의 첫 외부인(?)인 셈이다.

아이도 나랑만 있는 게 지겨웠는지, 오시기 한참 전부터 장난감 기차를 보여주겠다고 들떠서 기다렸다.




전혀 먹질 않으니, 불량식품이든 뭐든 먹겠다는 건 다 주려고 하는데

콕 짚어 전자레인지용 팝콘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 호기롭게 마트에 사러 갔다가 없어서,

이미 만 사천보를 걸었음에도 온 길을 돌아온 편의점을 뒤졌다. 그럼에도 못 구해서 가장 비슷한 맛으로 사 왔다.


아이가 원하는 걸 어떻게든 극성맞게 구하려고 하는 부모님들을 사실 예전엔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는데,

역시 직접 경험하기 전까진 뭐든 속단하면 안 되는 것일까.

산수유 열매를 구하려는 아버지의 시가 떠올랐다.

학창 시절에 이 시를 배울 때도 무덤덤하게 '주제=아버지의 사랑, 부성애'라고 영혼 없이 필기했던 기억이 나는 것 같다.


그때 난 알았을까, 팝콘 하나 구하러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온 마을을 비장하게 뛰어다닐 줄.


작가의 이전글 회사에서 먼저 인사하면 개이득인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