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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Dec 12. 2022

12월은 포장의 계절

엄마가 되니 새삼 좋은 점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12월은 포장의 계절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물이 나오는' 증기기관차다.

-집에서 (산타가) 줄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

-유치원에서 (산타잔치에서) 줄 크리스마스 선물 포장(*심지어 이 선물은 아이 몰래 직접 원에 가져다줘야 하는 미션도 있다.)

-12월 생일 맞은 친구들 선물 포장까지


12월은 끝도 없는 가내수공업 포장 지옥이다.

혹시 포장지로 엄마가 산타인 게 발각될 까 봐 애초에 다양하게 고르고, 그래도 혹시라도 볼까 봐 몰래 노트북 가방에 구겨서 숨겨왔다.

그리곤 아이가 완전 잠에 들면 혼자 거실로 나와 포장을 시작한다.


포장 마감을 보면 알겠지만 손재주가 엄청 없는 편이다. 이번에는 생일 카드라도 스킵해서 이 정도지 반 친구들에게 일일이 카드까지 써주다 보면 손이 너무 아팠다.


포장 실력이 없든, 일일이 카드 쓰는 게 취향이 아니든 '엄마' 무조건 해내야 한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어떤 일에 대한 핑계나 변명이 꽤 자연스러웠고, 쉽게 먹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

"나는 그런 건 절대 못해."

"나는 그런 건 절대 용납 못해."

"죽어도 안 해, 못 해." 등.


나의 취향을 핑계 삼거나 그냥 단순히 '싫어서' 안 한다고 해도 충분했다. 그렇게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엄마가 된 후, 내 취향이나 변명 따위는 애초에 무력할 때가 많다.

친한 친구 앞에서도 옷을 훌렁훌렁 갈아입지 않고 고집스레 살아오면 뭐하나.

조리원이라는 곳에 들어가면 처음 보는 사람들이 상반신을 벗어 제치고 경쟁적으로 모유수유 배틀을 하고 있는데.


처음엔 나만 혼자 방에 가서 해보기도 하고, 필사적으로 등을 돌린 채 해보기도 했지만

배고픈 아이와 '내 아이만 못 먹고 있다'라는 위기감에 비하면, 나의 수치심과 체면은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다.

오히려 거기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글러먹은 엄마'가 되는 일 같았다.




클수록 더하다.

나는 여전히 낯선 사람에게 말 거는 게 불편한 사람이지만, 아이가 작은 상처라도 났다 치면 모르는 사람한테 '밴드 없냐'라고 캐물어야 하고,

원에서 어디라도 다쳐왔다 싶으면 CCTV를 보겠다고 으름장도 놔야 한다.


나는 아직 모성애에 내 자아를 온전히 헌납하지 못했는지,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 행동을 하면 자괴감이 들 때가 많다. 눈물이 날 때도 있다.

가끔 남편은 이기적인 내 모습에 아직 엄마가 덜 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제 엄마로서 7년쯤 살아보니, 타의로든 절대 안 하겠다던 일을 하나 씩 해내면서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좋을 때가 더 많다.

퇴근길에 포장지를 한 움큼 사들고, 집에 아이 먹을 요구르트가 떨어졌다는 게 생각나 마트에 추가로 들러 낑낑 대면서 안 그래도 무거웠던 가방에 요구르트 묶음을 집어넣으면서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퇴근 후 내 얼굴보다 내 손을 먼저 쳐다보는 아들에게,

"이거 봐봐, 엄마가 요구르트 사 왔지~"하고 한 개를 꺼내 주었고 이로서 오늘 우리 가족의 저녁도 포근해졌다.

여기에 일조했다는 것만으로 나의 하루도 유의미해졌다. 강해질 만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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