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은지 피디 Dec 01. 2022

인도 출장 중 트레이너가 관뒀다

6일간의 인도 출장 막바지에 트레이너로부터 카톡 알람이 왔다.

오늘부로 개인 사정상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회원님의 남은 수업은 다른 선생님께 이관되어 진행될 예정이며....


인도 출장도 정신없는 중에 난데없는 트레이너의 이별 통보(?) 카톡이었다. 심지어 계약한 10회 중에 8회를 진행했을 뿐인데 말이다.


당혹감과 의문을 가지고 한국에 귀국.

심지어 바로 다른 트레이너에게 이관되어 연락을 줄 거라더니 약 4일간 아무런 연락도 없다.


마침 나도 이 기간 동안 송골매 공연 준비로 바빠서 별 피드백을 못하다가 오늘 오전에 잠깐 운동할 틈이 생겼다. 그래도 대표에게 정중하게 상황에 대한 얘기는 해야겠다 싶었다.

(*사실 이런 걸 잘 못하는 편이나 이런 건 공식적으로 항의해야 한다는 팁을 남편이 주었다.)




거의 환불원정대급의 마음을 먹고 헬스장의 도착했으나 1차 변수 등장.

늘 있던 데스크 자리에 대표가 없다.


"대표님 안 계신가요?"

시큰둥한 카운터 여직원의 답변이 돌아온다.


"대표님 운동 중이신데 무슨 일이시죠?"


상황을 얘기하니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대표를 부르러 간다.

이미 처음에 결심했던 환불원정대 급의 패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땀을 흘리며 대표님 도착.

항의하려던 내 마음과 어울리지 않게 활짝 웃으며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라고 친근한 반말투로 인사를 건네신다.


애써 꼿꼿하게,

"아시겠지만 담당 트레이너가 당일날 카톡으로 띡 그만둔다고 하더니 귀국하고 며칠간 아무런 연락이 없다. 당황스럽다"라고 외운 듯이 말해보았다. 내가 봐도 어색해서 침을 삼키고 반응을 지켜보려던 찰나


"너무...당황스럽네요."라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 그르니까아~ 얼마나 당황스럽겠어 나는. 당일날 와서 오늘 그만둔다고 하는데 뭐 어떡해 내가..."라며 얼굴에 있는 모든 근육을 다 쓰면서 전문 뮤지컬 배우처럼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이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정상적인 사람이 없다니까 진짜..." 하시며 너무 원통해하셨다. (*심지어 본인도 트레이너심)


그리곤 바로 원하는 날짜에 다른 선생님 수업을 잡아주셨다. 뭐 원래 목적은 가벼운 항의 및 권리 찾기였으나 애초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항의에 대응하는 헬스장 대표님의 진심 어린 분통을 보고 나니 안 그래도 잘 안 떨어지는 말이 쏙 들어갔다.




때로는 설정이나 준비 없이 그때의 감정을 연료 삼아 단전에서 끌어올린 진심이 가장 강한 것 같다. 그게 투박하고 정갈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나도 트레이너지만) 이 바닥 다 정상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




당혹스러움이 채 가시지 않은 채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대표님이 대회에서 2등을 한 에이스 트레이너로 세팅해줄 테니 더 열심히 해보라며 싱긋 웃고 운동 자세까지 코치해주고 유유히 사라지셨다.


#세상에강자가너무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회원님, 등에 '굳은살' 있잖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