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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Aug 26. 2022

내가 일곱 살에 책에 미치게 된 이유.

애정결핍을 급속 충전하는 유일한 방법

내가 일곱 살 때 우리 가족은 반지하에 살았다.



정작 지낸 기간은 1년도 안됐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유독  공간에서의 기억이 생생히 많이도 남아있다. 연탄불을 쓰는 곳이어서 그 연탄 불에 석쇠를 올려 생선구이를 하기도 했다. 어렸지만 본능적으로는 느꼈던 것 같다. 이 집이 좋은 집이 아니라는 걸. 근데 철들기엔 너무 어려서였을까. 유독 그 집에서 우리 남매는 크고 작은 사고들을 많이 쳤다. 나는 물이 담긴 김치통을 발로 밟아 반지하를 물바다로 만들어서 한 겨울에 문 밖으로 쫓겨나고, 오빠는 유리문을 발로 차서 아빠한테 업혀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반면 가장 설레는 기억을 만들어준 곳도  반지하 집이다. 내가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모르게 좋아하는 계기가 된 일이기도 하다. 당시 엄마, 아빠가 산타 대신 선물을 머리맡에 가득 두고 멜로디 카드에 아빠의 글씨로 카드까지 써준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성대한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이다. 명필이었던 아빠가 써준 '은지에게-산타할아버지로부터'라는 궁서체 글씨와 그때 받은 덴버 비디오(아래 그림 참조, 50원짜리 판박이 덴버껌도 참 좋아했는데...)도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산타는 진짜 있구나 실감(?)하며 꿈을 키워가고 있을 때, 엄마는 낮밤으로 일만 했다.



그 당시 엄마는 온 식구들이 다 잠든 밤에 혼자 빈 방에서 스탠드를 켜고 속눈썹을 다듬는, '건 당 몇십 원짜리' 부업을 했다. 식구 모두가 하루를 정리하며 잠들 때 엄마의 노동은 또다시 시작되었던 것이다.


좌측에 보이는 모양의 스탠드를 켜고 낡은 책상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속눈썹들을 펴놓고 길이를 맞춰 자르는 일이었다. 뒷모습은 목숨 걸고 공부하는 수험생 같기도 했다.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봤던 것 같은데, "너는 못해."라고 하면서 엄마는 내쪽은 돌아보지도 않고 가위질을 했다.


언젠가부터 나도 자지 않고 엄마 옆에 가서 앉아있었다. 그냥 어두운 방에 스탠드만 켜고 있는 것도 좋고 잘려나가는 속눈썹들도 신기해서 매일 밤 엄마를 구경했다. 사실 그보다 더 좋았던 건, 그때만이 엄마를 온전히 차지할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낮엔 엄마가 늘 바빴던 탓에 엄마로부터 애정을 느끼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거기다 내 성격 자체가 애정을 대놓고 갈구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아이 었다 보니 그냥 그런 걸 숨기고 살다가 깜깜한 밤이 되면 엄마품을 찾듯이 스탠드 켜진 방을 찾았던 것 같다.


책을 끼고 살게 된 게 그때부터였다. 그냥 가서 앉아만 있으면 엄마가 가서 자라고   같고 가장 좋은 핑계가 ''이었다. 당시 이모가 교보문고에 다니고 있어서 좋은 책을 가끔 선물로 줬지만 처음부터 책을 좋아하진 않았다. 책보다는 종이 인형이나 종합과자 선물세트를 좋아했고, 엄마 화장품을 으깨서 물에 섞는 놀이 같은 걸 좋아했다. 근데 엄마 옆에 합법적으로(?) 있기 위해 어린 나는 책을 들었다. 그중 내가 다니게 될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쓰신 동화책이 있었는데, 그걸 읽으면 엄마가 유독 좋아했다. 뭔가 힘들게 살고 있지만 제대로  교육을 하고 있다고 느껴져서였을까. "너네 교장 선생님 엄청 유명한 사람이야~"라며 엄마가 더 신명 나게 가위질 소리를 냈던 순간이다.

성함을 떠올려 검색해보니 98년도 기사가 검색되었다. (출처: 조선일보)


심경석 선생님이 쓰신 책을 읽고, 내가 " 벌써  읽었네."라고 말하면 엄마는 가위를 내려놓고 반색을 했다.

"진짜야? 그새  읽었어?  재밌지? 거봐 유명한 사람이라니까~ 우리 은지   읽네." 하며 엄청 칭찬을 해줬다.

엄마의 바쁜 가위가 멈추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했다. 그때, 어린 나는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아니, 달랑    읽었는데 이렇게 좋아하다니...!


당시 나에겐 문화충격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바쁜 엄마로부터 채워지긴 부족했던 애정이 급속 충전으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엄마의 호들갑을 보기 위해 매일 밤에 엄마 등 뒤에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책이라면 눈을 빛내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내가 고된 엄마의 피로를 씻어주는 존재가 됐다는  성취감과 희열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근데 정작 엄마는 그 때가 기억도 잘 안 난다고 한다. 오히려 "어머머머, 속눈썹 그런 것도 다 기억나? 진짜 너는 기억력도 좋다."라고 현재형 칭찬거리를 하나 추가하실 뿐...(지독한 딸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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