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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an 09. 2023

꼴찌 아들의 아름다운 언어세계

"엄마 나는 다 꼴찌야. 밥 먹는 것도 공부도 맨날맨날 꼴등이야."


아이가 자주 하는 말이다.

고작 일곱 살에 1등, 꼴등을 나눈다는 것도 웃기지만

유치원도 엄연한 사회생활이기에 분명한 등수와 위계가 있다.


수영 수업만 해도 수준별로 정해진 레인이 다르고,

점심을 1등으로 먹어야 인기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기회가 생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아들은 덧셈, 뺄셈도 부족하고, 한글도 부족하고

편식도 심하고 식탐도 없어서 공부시간이 아닌 식사시간에도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자기 전이나 아침이면, 나는 꼴등이라서 혹은 친구들이 나를 싫어해서 유치원에 안 가겠다고 한다.


그럴 때면, 아이가 잘하는 걸 하나씩 나열해 주면서,

"거봐, 네가 1등이야."라고 해주는데 이 말에 마음이 풀려서 웃으며 등원할 때도 있고,

"아니야, 친구들이 나보고 애기야 우쭈쭈라고 그랬어."라며 고집스럽게 안 믿을 때도 있다.




11월 말에 태어나, 이것저것 늦되다는 말만 듣던 아이도 어느덧 성장하고 있다.


어느 날은 창 밖을 보더니 아이가 말했다.


-엄마, 지금 아침이야?

-응, 아침이지. 해가 떴으니까.

-나는 아침이 진짜 좋아, 새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니까 좋아.


참고로 우리 집은 아파트로 새소리가 1도 안 들리는 곳이다.

그럼에도 '아침=새소리가 나는 아름다운 시간'으로 정의 내린 아들의 언어가 순수하고 사랑스러웠다.


아직 발음도 정확하지 않아서,

선생님->선생'밈'

할머니->'함'머니

보고 싶어->보고'피퍼'


이렇게 발음하곤 하는데, 너무 속 편한 엄마인지 그냥 귀여워서 웃음이 난다.


맘카페에서 어떤 엄마가, 아이들이 선생님 질문에 단체로 답할 때 주로 하는

"네네 선생님~"을 "메메 선생님~"이라고 하는 게 너무 귀여워서 한동안 고쳐주지 않았다는 글을 봤는데 엄마 마음은 다 같은가 보다.


능숙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것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좀 더디더라도 본인만의 밝은 마음을 표현하는 말들을 많이 만들고 말하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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