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에선 누가 갑일까?

by 편은지 피디

나는 면허가 없다. 게다가 길치다.

고로 택시를 자주 이용하게 된다.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주로 묻는 말이 있다.

"어느 길로 갈까요?"라고.


어차피 길도 잘 모르는 나는 주로 이렇게 말한다.

"기사님 편하신 길로 가주세요."


그리곤 괜히 '호구 잡힌 건가...'라는 긴장감을 갖고 택시를 이용하게 된다.

택시에선 운전대를 잡은 사람 or 돈을 지불하는 사람 누가 더 우위에 있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꽉 막힌 좁은 공간에서 길눈도 어둡고, 말싸움도 잘 못하는 나는 내가 약자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택시가 정말 편하고도 불편하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뒷좌석을 보니 누군가 흘린 것 같은 최신형 휴대폰이 있다.


기사님께 건네드렸다. 힐끔 보더니 옆에 조수석에 두라고 했다.

그러더니 약 5 분 뒤,


"휴대폰 좀 만질 줄 알아요?"

마침 내가 쓰는 기종이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전화를 건 목록을 봐달란다.


비번도 걸려있지 않은 휴대폰. 빨간 하트가 붙어있는 가장 많이 전화를 한 사람이 부재중 전화 목록에 있다.

아마도 여자친구 아니면 부인이겠다 싶었다.


애타게 휴대폰을 찾고 있는 듯 보였고, 배터리도 얼마 안 남은 상황이라 기사님께 의심 없이 그 번호를 불러드렸다. 걸어보니 예상대로 여자친구였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사람의 최측근답게 감사함에 어쩔 줄을 모른다.

을지로에서 근무 중이라는 여자친구, 여기로 와주실 수 있냐고 물으니 기사님이 대답하는 말.


"아유~거기가 어딘데 가요! 혹시 또 보수를 주시면 몰라도."

무조건 드린다고 하는 여자친구와의 통화에 내 눈치가 보였는지 알았으니 일단 끊어보라는 기사님.


끊기가 무섭게 휴대폰 주인인 남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직장이 김포라고 했다. 참고로 통화 당시 김포 바로 근처인 상황이었다.


블루투스로 쩌렁쩌렁하게 중계되는 통화를 본의 아니게 청취하며, 마침 근처니까 늦지 않게 휴대폰을 찾을 수 있겠구나 하고 안도하던 찰나,


"기사님은 혹시 지금 어디신가요?"라고 묻는 휴대폰 주인.


그러자 갑자기 당황하시며 지금 손님도 있고 운행 중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말하냐고 한참을 둘러대더니,

큼큼 헛기침을 두어 번 하시곤,


"여긴 영등포쯤인데 왜요?"라고 말씀하시는 기사님. (영등포와는 한참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여전히 김포 근처 였는데.)


김포까지 와 주실 수 있냐는 말에,

"아유~ 김포 들어가는 것만 해도 택시비만 4, 5만 원인데 어떻게 가요! 못 가요 못가. 혹시 또 보상을 해주면 몰라도."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자 휴대폰을 잃어버린 죄인(?)이자 주인은, 서울 나가는 비용까지 몇 배로 전부 드리겠다고 읍소를 한다. 그러자 기사님이 활짝 웃으시며 다급하게 나한테 말씀하신다.


"저기, 좌회전해서 굳이 안 들어가고 여기 그냥 세워줘도 되죠?"

김포까지 가서 두둑이 대가를 받을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셨나 보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나는 목적지가 아닌 길 건너편에 버려지듯 내려졌다.


그리고 소소한 긴장감은 불편함으로 바뀌어버렸다.


떠나버린 택시, 아마도 청년은 김포에서 잃어버린 휴대폰을 찾을 것이고 그 날 저녁 여자친구한테 꽤나 잔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곤 나는 택시가 떠난 자리에서 조용히 "해당 기사님 다시 만나지 않기" 버튼만 누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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