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가 어찌 됐건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흔히 반성문에서 볼 수 있는 내용인데,
'이유가 어찌 됐건‘ <- 이 표현에 반성의 기미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 아이돌 멤버가 사과를 했음에도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을 봤다.
반성문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을 뉘우치는 문서'로 목적이 뚜렷한 형식의 글인데,
어떤 경우에는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하고 어느 경우에는 어떤 죄목에도 다 대입이 될 정도로 형식적이라고 비난받는다.
예전에 방송인 유병재 씨가 이런 표현에 담긴 속뜻을 얘기했던 것에 공감했던 기억이 있는데,
나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반성문을 떠올렸을 때 느껴지는 속뜻을 정리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 대부분의 반성문의 여는 말 혹은 닫는 말로 사용되는 문장으로 보통 영혼은 없다.
-마음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 회사와의 입장 및 관계자 컨펌 등 입을 맞추느라 시간이 소요되었다.
-잘잘못을 떠나 죄송하다 : '내 잘못을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회사가 시켜서 일단 사과는 하겠다.
-사실 여부를 떠나 죄송하다 : 나의 잘못이 '사실'임을 아직 100프로 인정할 순 없지만 어쨌든 사과는 상황상 하는 상황.
-철없던 시절의 잘못이다 : 이미 다 넘어가도 무방할 정도로 희석된 과거의 일임을 알아달라. (지금은 결백하다.)
예전에 <해피투게더> 조연출 시절하던 시절에 당시 엠씨였던 전현무 씨가 KBS 재직 시절에 경위서를 굉장히 잘(자주) 써서,
본인만의 비결이 담긴 양식이 USB가 동료 직원 사이에 돌았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토크가 전부 기억나진 않지만, 일단 반성문도 심금을 울려야 하기에 도입은 무조건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혹은 "저는 죽어 마땅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문장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다들 과하다며 놀리기 바빴던 기억인데, 그래도 과할지언정 여느 반성문과는 다른 첫 한 줄이 있었다.
그 한 줄에 선배든 상사가 피식 웃거나 언 마음이 조금은 녹지 않았을까.
만능 반성문에서 '만능'이란 말은 군더더기 없이 완벽하다는 뜻도 되지만, 그 문장들 속에는
투박하고 어리숙해 보일지라도 화자의 심란한 마음을 담은 진심은 결여됐다는 뜻이기에 그 틀이 완벽함에도 조롱받게 되는 것 같다.
사회생활 연차가 늘어가며 각종 스킬이 늘어갈수록 오히려 틀이나 테를 갖추는 것보다,
마음을 흔드는 한 방울을 담는 게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