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심자랑대회 <주접이 풍년>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수많은 팬들을 만났다. 특히 중년팬들을 많이 만났다. 인생을 꽤 사신만큼 감히 상상하지 못할 만큼 겪어오신 풍파도 많았다. 팬들의 인생 얘기를 듣다가 제작진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눈빛부터 달라지는 단 한 개의 주제가 있었다.
바로 '임영웅'이었다. 낯선 방송국에 와서 젊은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든 마음도 온데간데 없어지는 듯했다.
"아니, 피디라는 사람이 우리 영웅님 생일도 몰라요?"
"아니, 피디라는 사람이 최애돌 투표할 줄도 몰라요? 참나."
오히려 당신들이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젊은 제작진을 나무랄 정도였다. 그간의 삶의 고됨이 싹 씻긴 듯 초롱초롱하고 자신 있는 눈망울이었다. 그야말로 '영웅님이 진짜 큰 일 하고 계시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는 주어만 달라질 뿐, 장민호 님도 나훈아 님도, 몬스타엑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아픈 사람을 덜 아프게 하고, 헛헛한 삶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대단한' 존재였다.
나도 모르게 비록 팬심은 아니었지만,
이들이 부디 아프지 않고 사건사고 없이 롱런하기를 바라게 됐다. 만약 무슨 일이 생겨난다면 내가 만나온 수많은 팬들이 너무도 절망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프로그램은 종영했지만, 고마운 팬들에게도 종종 연락이 오고 있고 이제는 나 역시 덕질 중이다.
엔터업계에 종사 중인 남편이 어느 날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는 이제부터 더 열심히 일하기로 했어. 너네 엄마 봐라, 스트레이 키즈 보고 저렇게 좋아하잖아. 엄마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더 열심히 일 하기로 결심했다."
민망했지만 부인할 수 없었다. 너무나 사실이었으니까.
회사에서 화나고 억울할 때, 내 이름이 적힌 싸인 씨디만 봐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내가 주접이 풍년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심지어 헬스장에서 운동이 고돼도 이 친구들의 콘텐츠와 함께라면, 너끈히 천국의 계단 한 시간쯤은 즐거운 마음으로 해낼 수 있다.
이런 내 모습이 거슬렸는지(?) 언젠가 내 담당 트레이너가 와서 물었다.
"회원님, 근데 맨날 왜 똑같은 것만 보세요? 설마 좋아하세요? 아~ 회사에서 아이돌 담당하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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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그냥 가만히 있었다.
#어덕행덕 #주접이풍년시즌2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