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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an 17. 2023

귀하는 과체중 허약형에 속합니다

과체중 허약형과의 작별

작년 10월 말 야심 차게 거금을 들여 등록한 헬스장.

카드 결제 이후 통과의례처럼 올라가 본 인바디 기계. 


이게 뭐라고 인민재판이라도 받는 양 긴장된다. 

긴장하든 말든 결과는 늘 "내가 이 정도라고?? 아닐 텐데??"라며 어이없는 수치에 격한 현실부정을 하며 힘없이 내려온다.


그때 이후로 식단을 (대에충) 지킨 결과 체중은 왔다 갔다 했지만, 

인바디는 늘 나에게

"귀하는 과체중 허약형에 속합니다."라고 반복적으로 말해왔다.


예전에 래퍼 영지가 다이어트를 할 때 실제로 체중계를 부쉈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매번 얄미운 저 문장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만약, 저 기계가 내 소유였다면 부수진 않더라도 몇 대 칠 순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 딩고뷰티 페이스북




그리고 내 기준, 맥주 없이 혹독한 2주 남짓을 보내고 나서 어제 측정한 인바디.

앞자리가 바뀌긴 했으나 대단한 감량은 아니라서 큰 기대 없이 올라갔는데, 


"귀하는 표준체중 건강형에 속합니다"


!!

오 처음 보는 문장. 신선했다.

나만 올라가면, "귀하는 과체중 허약형"이라고 마치 기계임에도 생명체인 듯 나를 알아보듯 '너는 과체중 허약형 인간'이라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줄 알았는데.


기뻐할 틈도 없이 트레이너가 쉴 새 없이 체지방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데 너무 어려워서, 

"그나저나 얼마나 더 줄이면 정상 범주에 들어가나요?"라고 물었는데,


트레이너가 너 바보니라는 표정으로 "체지방률은 이미 정상이에요."라고 말해주었다.


모름지기 정상과 비정상을 함부로 판단하고 구분지어선 안 된다고 잘난 척 엄청하고 살았는데,

이깟 종이 한 장이 나를 '정상'이라고 말해줬다고, 또 속 없이 엄청 기분이 좋아졌다.

.

.

.

그러나 기쁨도 잠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건가.

표준체중 뒤에 '건.강.형'이라는 이 세 글자가 또 거슬린다.


'건강형'이라는 말은 보통 우직하거나 덩치가 좋은 사람(내 얘기)한테 어른들이 특히 많이 쓰는 말 아니던가.

얄미운 인바디 기계에게 들어서인지 뭔가 더 찝찝하다.


대체 지난한 다이어트에 끝엔 무엇이 있을까.

저체중 미인형? 이런 건 없겠지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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