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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Feb 12. 2023

칠십 노인의 통찰력을 가졌다는 말은 칭찬이었을까

『불량한 오십』_이은숙 지음

어렸을 때부터 중년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렇다.

이러면에선 송골매 콘서트를 마치고 맡게 된 <살림하는 남자들>이라는 프로그램이 적합할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한창 꿈 많았던 20대 초반. 그때도 책을 읽으면 싸이월드에 폴더를 만들어서 매일같이 독후감을 올리곤 했다.

그때, 같이 기자인턴을 했고 지금은 아나운서가 된 정지은이라는 친구가(잘 지내지?) 나의 북리뷰 게시물에

"편, 너는 칠십 노인의 통찰력을 가졌어."라는 댓글을 달았었다.


아마 본인은 기억도 못할 테지만, 나도 가끔 나의 이런 디테일한 기억력에 소름 끼칠 때가 있다.


내가 평소에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나의 일촌명을 김구라에서 착안해 "편구라"로 지정했던 친구.


암튼, 가장 찬란하고 예뻤어야 할 나이에 칠십 노인의 눈을 가졌다는 건 칭찬인지, 멕이는 건지...

아직까지 결론을 못 내렸지만, 순했던 성향의 그 친구가 던진 말이기에 전자였으리라 믿는다.


암튼,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나보다 세월을 오래 살아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이 책의 저자도 30년 직장 생활을 하고 이혼과 동시에 가장으로 살며 '가족'이란 이름하에 용인되어 온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해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의 태도가 부정적이었다면 논문 같은 글이 되었겠지만, 다행히 위트와 필력이 있어서 완결된 책으로 나오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 본다.



나이가 많아지면 일상이 무너지기 쉽다.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의무로 이루어져 있는데 노인이 되면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남은 의무라야 자기 건강 잘 지켜 자식들 귀찮지 않게 하는 정도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하루 세끼 안 먹어도 되며 노인정은 결석해도 된다. 몸만 아니라 마음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글 해지기 쉽다. 인생의 끝이 가까워 오고 있는데 나날이 즐겁고 활기차면 그것도 이상하긴 하다.

-p.17 <꿈보다 일상이 먼저다> 중




생각할수록 가족은 정체불명의 집단이다. 어쩌다 우리는 한 가족으로 만나 이토록 사랑하고 미워하고 걱정하고 서운해하고 궁금해하고 귀찮아하는, 날 것 그대로의 인간관계에 기대어 살게 되겠나. 지금 내 옆에 있는 저 할머니, 저 남자, 저 청년, 저 아가씨, 저 학생, 저 아이가 내 인생을 마구 휘젓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내 의지와 선택의 개입은 이렇게나 제한되어 있는데, 어디서부터 이 억센 인연이 시작된 건지.

-p.68 <정체불명의 집단, 가족을 생각함> 중
이게 다 부모 자식 관계가 뇌신경세포의 시냅스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은 각자의 행/불행이 곧장 상대와 연결되는 특수관계자들이다. 동시에 서로에게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들이다. 오죽하면 자신을 망가뜨려 부모를 불행하게 만드는 자식들도 있지 않은가.

-p.81~2 <대책 없는 부모 사랑을 고발한다> 중





존재를 상기하는 것만으로 가슴을 짓누르는 가족이 있다.

사회에서 만났더라면 가식 만렙으로 웃으며 응대하거나 없는 사람 취급할 수 있었을 텐데 혈연이 뭔지 그렇게도 안 된다.


가족 관계란 발달된 사회성이나 개인의 역량이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영역이며,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로 죄책감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더 운명적이고 소중하다고 느껴야 하겠지만 그 그릇을 갖추기까지 참 벽이 많다.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대체 왜 가족때문에 힘들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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