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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Mar 13. 2023

[증상] 친엄마를 욕하고 싶을 때 직방

『엄마는 괜찮아:엄마를 잃고서야 진짜 엄마가 보였다』_김도윤

'부모가 부담스럽다니.' 제목부터 불경스럽고 불손하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다.



사실 부담스럽다는 단순한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고, 본질적으로는 미친 듯이 고맙고 미안하고 한편으론 불쌍하고 답답하고 이해가 안 되고 가끔은 너무 싫고 아이 같고 한숨이 나오고 결국은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이 더 싫어지게 만드는 모순적인 그런 존재다.


엄마를 향한 이 모든 통일감 없는 너저분한 감정들이 똘똘 뭉쳐 커다란 바위가 되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역으로 엄마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실제론 그렇게 하는 것도 없으면서 내가 뭐든 챙겨야 하는 존재라는 의무감이 드는데, 그 생각을 갖는 것 자체가 그릇이 크지 않은 나에게 압박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다시 한번, 엄마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최근엔 거의 유일하게 한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버린 책이며,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김도윤 작가라는 분의 엄청난 필력에 중간쯤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책 내용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던 형이 우울증과 조현병으로 세상과 절연하고 방에 숨기 시작하면서, 그런 아들 앞에 모든 의욕을 잃고 먼저 삶의 끈을 놓아버린 어머니의 이야기다.






순간 본능적으로 느꼈다. 사실 아버지의 말을 다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이 한마디에 아버지가 지난 35년간 내게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감정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면했다. 자식으로서 본능적으로 뭔가를 느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또 다른 이기적인 본능은 그 불안한 예감을 애써 부정했다.
 
"엄마가 왜요? 다시 병원에 가야 한대요?"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그 정도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그 정도면 퍽 최악의 소식이라는 마음으로.
 
"엄마가 떨어졌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떨어졌어. 네가 대구로 와야 할 것 같다."

-p.18~19


본능적으로 이미 내게 닥친 불운을 다 감지하고도, 내면 속에 깊이 자리한 '절대 아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애써 모른척하는 그 시린 마음. 표정과 행동은 덤덤한 척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지가 벌벌 떨리는 그 마음을 감히 알 것 같아서 도입부터 마음이 저렸다.


장례식장에는 엄마의 손님이 없었다. (중략) 정말이지 엄마는 철저하게 우리 가족만을 위해 살았다. 엄마는 혼자였다. 그런 엄마에게 우리는 늘 등만 보였다.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등을 어루만져 주던 엄마의 손길은 기억하지만 그 손길 끝에 자리한 엄마의 눈은, 엄마의 입은, 엄마의 주름은, 엄마의 표정은, 무엇보다 엄마의 외로움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혼자였다. 홀로 살다, 홀로 그리워하다, 홀로 받쳐주다, 홀로 홀연히 떠나셨다. 그렇게 살아온 사람의 장례식장이었다. 장례식장이 유난히 어두웠던 이유는 고인의 사인이 자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마치 고장 난 시계처럼 형과 나의 시간에 멈춰 있는 것만 같았다. 형과 나의 시간에 맞추어 째깍거렸다. 그리고 가끔 엄마의 시침은 어느 시간대에서 멈춘 후 그곳에서 우리의 침과 겹쳐지기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몇 안 되는 시간을 위해 엄마는 평생을 기다렸으니까.

-p.68



하늘에 천국이라는 곳이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곳에서도 내 걱정으로 눈물 흘릴지 모른다. 다음 생은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 생에서마저 나를 기억할지 모른다.


눈물이 났던 문장이다. 눈물이 났던 정확한 이유가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답답하고 짜증 나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까지도 이해가 도저히 안 되는 구석이 있어도, 결국은 우리 엄마도 끝끝내 그럴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나 보다.


지금 이 순간, 엄마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모든 불경스러운 이들에게 감히 일독을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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