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 거리(?)가 없는데 넌 왜 불행할까

타인의 우울을 함부로 속단하지 말라

by 편은지 피디
우울할 거리(?)도 딱히 없는데 대체 왜 행복하진 않을까?





얼마 전 강연을 듣게 된, <나의 해방일지>의 박해영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다.


나도 꽤나 감정의 기복이 있는 편이고, 어릴 때부터 이 점에 대해 지적 아닌 지적을 많이 받아왔다.

뭔가 좀 우울함에 빠져있을라치면, 엄마는 정~말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매섭게 쏘아붙였다.


"무슨 부모가 죽기라도 했냐?" 혹은 "전쟁이라도 났냐 뭘 그렇게 죽을상을 하고 있어!"라며.

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어두운 내 자식의 표정 하나에 덜컥 불안하고 겁이 나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나왔다는 게 어슴푸레 이해는 된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도 엄마의 저 위로법은 옳지 않았고 실제로 효과도 없었다.

나의 우울함의 이유가 부모의 유무 혹은 전쟁과는 전혀 무관했기 때문이다.


사실 '적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서' 마냥 우울한 적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얼굴 펴. 누구 죽었니?"라는 위로 혹은 조언은 마치 특정 음식에 구역질이 날 만큼 편식이 심한 사람에게, 극대노하며


"지금 지구 반대 편에서는 지금도 굶주려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1분에 몇 명이고$%$#^%^"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나도 엄마로부터 많이 들어본 말이고 이건 흔한 한국 엄마의 사랑의(?) 고정 멘트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적당하지 않고 효과도 없다.




저렇게 젊고, 예쁘고, 돈 많고, 인기 많고, 명품도 많던데 뭐가 우울할까?

나는 집도 없고, 직장에서 맨날 구박이나 받고, 못 생겼고, 잘 나가는 친구도 없는데, 이런 나도 사는데.


이런 얘기를 정말 많이 듣는다. 오히려 연예인 혹은 유명인이랑 가까이 있는 직업군에 있다 보니까, 대체 저들이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며, 저들은 왜 그러는 거냐고 나에게 묻는 경우도 있다.


이해가 안 될 순 있다. 그러나 그 답답함을 내가 감히 물어봐줄 수도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도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가볍게 얘기하는 의식주 문제에서 기인하는 얕은 감정이나 우울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물 한잔이 든 가벼운 컵을 잠깐 들고 있는 건 전혀 문제가 안되지만, 그 컵을 반나절만 들고 있어도 누구라도 팔에 마비가 올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고 한다.

가벼운 물 한 잔의 무게라도 그걸 내려놓지 못하고 오래 들고 있으면 누구라도 파멸할 정도의 고통을 겪을 수 있는 것이다.


답답해하며 "그냥 물 컵을 내려놓으면 되잖아" 혹은 "물 한 잔이 뭐 그렇게 무겁다고."라고 또 가볍게 말할 수 있겠지만,


컵을 내려놓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도, 컵을 내려놓으면 된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우리가 함부로 타인을 속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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