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같은 아저씨만 봐도 눈물이 난다

by 편은지 피디

어제 아빠 산소에 다녀왔다. 산소에 가야 할 날짜를 내가 잘 못 챙기는 편인데, 재작년인가 한 번 걸렀더니 내 꿈에 아빠가 나와서 나를 엄청 원망했다. 알고보니 그날이 음력인가 양력으로 아빠 기일이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남편이 먼저 알아서 산소에 갈 날을 챙기고 있다. 2018년에 돌아가셨으니 이제 4년이 넘었는데 이번에도 산소 가는 길에 줄줄 눈물이 났다. 또 길거리에서 아빠 나이대의 사람을 봐도 왈칵 눈물이 나곤 한다. 나는 이런 내가 모순적이고 가식적이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내가 아빠를 엄청나게 싫어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를 무던히 미워했다. 우리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근거에서였다. (그런데 이것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많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떽떽거리기만 하는 나를 예뻐만 했다. 가끔 토라질 때도 있었지만 그 역시 아빠의 사랑에 부응하지 않는 나에 대한 서운함에 대한 표현이었다. 아빠는 내가 서른도 되기 전에 본인을 절대 미워할 수 없는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그건 바로 대장암 투병이었다.


안 그래도 마음 여린 아빠는 암 투병을 하며 더 아이 같고 나약해졌다.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주룩주룩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그런 모습에 너무 화도 나고 동시에 눈물도 나는 내가 너무 싫었다. 그래도 나도 강철 멘털은 아닌지라 아프다는데 더 모질게 할 수가 없어서 병문안도 가고, 아빠가 그토록 원했던 여행을 오빠와 셋이 포천으로 갔다. 말이 여행이지 아픈 본인이 운전하고 달랑 갈비만 먹고 오는 반나절짜리 여행인데 여기서 1박을 꼭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다. 내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도 너랑 같이 얼마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안 된다고, 싫다고 했다.


암튼 그 별거 없는 여행을 안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빠와의 마지막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행에서 난 이제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닌데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했듯이 자꾸 오빠랑 나란히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나 너무 살쪄서 찍기 싫어. 안 찍어"

"그래도 괜찮아. 괜찮기만 해."


"너는 뭘 해도 괜찮아. 다 괜찮아."

자꾸 내가 뭘 해도, 어떻게 생겨도, 어떻게 말해도 괜찮다고 한다. 공부만 하느라 엄청 살찌고 엄청 화내고 가장 못났던 나의 수험생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너 엄청 귀여웠는데...'라고 한다. 난 기겁하면서 어디 가서 창피하니까 그런 말 절대 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모진 말에도 그냥 "참나~"라고 하면서 웃기만 한다.


근데 이제는 내가 뭘 해도 '다 괜찮다'고 말해 줄 사람이 없다.


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대신 '이래선 안 된다, 저래선 안 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불평이 아니다,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특정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 사실 아빠는 어차피 자주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내 옆에 있고, 없고가 큰 차이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차이는 겪어보기 전에는 모를 만큼 뼈아프게 큰 차이었다. 그래서 아빠 산소에 4년째 가면서도, 또 길을 가다 아빠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등산복 입은 사람들만 봐도 눈물이 난다. 위선적인 나 자신이 어이없음에도 계속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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