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장례식장에서 받은 기습 위로

《안녕 아빠》_오채원 지음

by 편은지 피디

2018년 아빠의 장례식을 치렀다. 대부분의 죽음이 그렇겠지만, 돌아가신 아빠도 나도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맞닥뜨린 장례식이었다. 그 결과 온당한 감정인 슬픔 대신 장례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당혹감, 수치심, 분노 등의 복잡한 감정이 쉴 새 없이 나를 괴롭혔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로하겠다고 찾아왔지만 아이러니하게 복잡한 감정 속에서 그 사람들을 신경 쓰느라 오히려 그 어떤 위로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미성숙한 모습으로 아빠의 장례를 치른 후, 일 년쯤 지났을까. 동기 오빠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우연히 회사 어른들과 상갓집에 둘러앉았고, 그 자리에 나와 나이 차이가 20살 이상 나는 50대 선배님이 나를 보며 갑자기 말씀하셨다.


은지처럼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다는 게 참 안타까워. 나는 이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님이 없다는 게 상상조차 안되는데 말이야.


심지어 그 자리는 내 부친상도 아니었고, 음식을 드시면서 아무렇지 않게 던진 말인데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공격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초담백한, 팩트에 기반한 위로였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시다니, 너 정말 안됐다. 딱하다.”

원래 성향이 그런 어른이기도 하셨지만, 오히려 그런 꾸밈없는 말에 억눌려있던 감정이 터졌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럴싸하게 포장된 말이 아니었나 보다. 그냥, 단순히, “너 진짜 슬펐겠다. 불쌍하다.” 이런 직선적인 공감의 말이 듣고 싶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단 위로를 건네기 전에 무례하지 않게 전달하기 위한 수많은 미사여구를 생각한다. 그래서 그렇게 꾸며진 위로의 말을 듣다 보면, 듣는 입장에서도 어떤 표정으로 이 위로의 말을 들을지 생각할 여유가 생기고, 적당한 선의 표정과 응대를 하게 된다. 그런데 내 감정선을 건드린 위로는 뜻밖의 사람에게서 건네 졌다. 내가 이렇게 생각지도 않은 사람에게서 심도 깊은 위로를 받았듯, 오채원 작가는 《안녕 아빠 - 울 틈이 없는 맏딸의 애도 일기》라는 책을 쓰면서 못다 한 애도를 시도한 것 같다.




장례식장은 생각보다 전혀 감성적이지 않다.


고모는 점차 눈물이 그치고 입으로만 ‘아이고아이고’ 하셨다. 마치 어린아이의 마른 울음처럼. 큰고모 등장 이후, 빈소는 제법 초상집다운 초상집이 되었다. 그전까진 상복 입은 사람들이 엉성하니 서 있기만 했는데 곡소리, 눈물 바람, 근조 화환, 향냄새, 육개장, 그리고 사람들이 어우러져 웅성거리는 풍경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48쪽
옛날 사람들은 초상을 치르며 며칠이고 곡기를 끊다가 간신히 미음 몇 숟가락을 드는 둥 마는 둥 했다지. 상복을 입고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왠지 죄스러웠다. 코다리 조림이 맛있더라는 엄마의 품평, 냉장고에서 시원한 수박을 꺼내 먹으라는. 고모부의 말씀이 어색하게 들렸다. 그 와중에도 육개장이란 녀석은 맛이 괜찮았다.
-52쪽


장례식이 완성되려면 생각보다 갖춰야 할 준비물들이 많고, 그것들 각각에는 꽤 많은 옵션들이 있다. 그 옵션을 고민함과 동시에 슬픔을 느끼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남은 사람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이 장례식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전 투표를 한 데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때만 해도 아빠가 이렇게나 급하게 가실 줄 몰랐으니까. ‘다 이유가 있었나 봐’하며 시답잖게 지난 일에 생각을 끼워 맞췄다. 극적인 일을 겪고 나면 자연스레 운명론과 친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확실한 건, 먼저 감정의 대비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점. 시간이 흘러서야 ‘아 그때 그래서 그런 거구나’하고 느끼지만, 이 역시 아빠와의 교감으로 내린 결론이 아닌 내가 살기 편하기 위해 내린 산 자의 결론일 뿐이라는 게 서글플 때가 있다. 그래서 한 번쯤은 나와 내 가족의 장례식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만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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