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슬프게도 항상, 늘 그렇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파토나서 시간이 떴다.
아빠에게 카톡을 한다.
“아빠 약수역으로 올래?”
바로 답장이 온다.
“그래, 아빠 갈게.”
너무 엄마한테 무심했나 싶어서 카톡을 한다.
“엄마 내일 외식할래?”
“그래, 엄마가 너 있는 데로 갈게.”
다급하게 당일에 불러내거나 심지어 한 시간 전이라도 나는 부모님께 시간이 안 된다거나 못 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보통 인간관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역으로 생각해도 당일에 점심 초대를 하거나 하면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내가 무슨 30분 전에 연락해도 나와줄 줄 알았나.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심지어 설레는 표정으로 약속 장소에 늦지도 않고 나타난다.
엄마는 심지어 꾸미기까지 하고 나올 때가 많다.
무슨 귀걸이까지 하고 나왔어라고 괜히 타박을 주면 “그냥 네가 전에 준거해봤지.”한다.
아빠는 지금 돌아가시고 내 곁에 없지만, 심지어 암 투병 중일 때도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왔다.
그 날도 급히 불러낸 나와 함께 고속터미널에서 잘 먹지도 못하는 식사를 하고, 속이 안 좋았는지 급히 화장실을 찾던 아빠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항암하느라 아파서 얼마 먹지도 못할 거면서 그냥 나와서 얼굴 보고 내 방송국 생활 얘기 듣고 그런 게 좋았었나 보다.
할 말도 없어서 금방 헤어지는데도, 어쩌면 아파서 돌아가시는 순간 전까지도 뭐가 그리도 내가 보자는 말에 언제 어디서든 바로 달려 올 정도로 좋았을까.
철없을 때는 정확히 몰랐다.
그냥 부모란 진짜 “No"가 없는 사람들이구나라고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이제는 모든 부모가 그렇지 않다는 걸 늦게나마 안다.
그래서 그게 언제든 내가 부르면 한 달음에 달려왔던, 이제는 부를 수 없는 아빠를 떠올릴수록 더 슬프기도 하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런 내 마음을 1도 이해 못 하시고 “참나, 슬프긴 왜 슬퍼. 자식이 보자면 당연히 좋아서 나가는 거지. 괜찮아.”라고 말할 것 같아서 그게 더 미안하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