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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un 20. 2023

잘 나가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이유

BTS와의 인터뷰를 잊지 못하는 이유

"우리 다 짐 싸야 할 것 같아."

"타사도 피디들 한 바탕 정리했다는데?"

"우리는 예능 다 접고 인형 눈이나 붙이는 제조업 같은 걸로 업종 변경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최근 만났던 회사 선배들과의 식사자리에서 들은 농담(?)들이다.


이러한 자조적인 농담들을 연료 삼아 소소한 우정을 키워나가는 면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이날은 유독 듣기에 마음이 힘들고 지쳤다.




대학 때,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유독 부정적이었다. 물론 나 또한 미친 긍정으로 밝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는지 자주 만났었는데 뭔가 언니와 얘기를 할 때마다 늘 변함없이, "해봤자 안 될걸? 다 부질없을 걸?"이라는 말과 한숨이 같은 패턴으로 돌아왔다.


그런 언니와 매일같이 교류하던 어느 순간, 언니의 부정적인 에너지에 200% 동화되어 나도 모르게 '그래 맞아, 다 부질없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한강 다리라도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때 정신이 번뜩 들었고 의식적으로 '살기 위해' 그 언니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오랜만에 만난 회사 선배들과의 자조 섞인 농담마저 가볍게 들리지 않았고 그저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확신만 들었다.


이와 정 반대의 예시도 있다. 몇 년 전 <불후의 명곡> 조연출을 하던 당시 BTS의 프로듀서인 피독이 전설로 나오는 특집을 준비한 적이 있다.


메인 연출 선배가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당장 내일 BTS 사옥에 가서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해오라"고 했다. 본인도 아이돌은 잘 모르니 세팅이나 내용은 알아서 '잘' 하라고만 덧붙이셨다.


전 날 받은 갑작스러운 오더(?)지만, 인터뷰 장소인 밋밋한 연습실에 뭐라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 상징생인 보라색 조명과 데코들을 준비했다. 다행히 비용을 쓰는데 선배도 선뜻 너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해주었다.

당시의 감동을 담아서 만들었던 인터뷰 준비 장면 선공개 영상

[선공개] 불후X방탄 인터뷰 준비중인 월드클래스 아이돌 ✨️BTS✨️ [불후의 명곡] ㅣ KBS방송 - YouTube



평소 연습하던 공간이 꾸며진 게 신기했는지 하나둘 씩 촬영 장소로 들어오던 멤버들이 모두 떠들썩하게,


"이야~ 연습실이 이렇게 예쁠 수 있는(?) 공간이었네."

"오! 뭔가 본격적인데?"

"뭘 많이 준비하셨네. 감동이다 감동." 하면서 밝은 에너지로 등장해 주어서 낯선 공간에서 잔뜩 긴장한 스태프들이 한결 편해진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인터뷰 중간에 멤버들이 프로듀서 피독의 얘기를 하다가,

"근데 피독 형 이름 뜻이 뭐지? 왜 피독이지?" 하며 궁금해하던 차에 마침 전 날 찾아본 자료가 떠올라서,

"스눕독에서 따온 건데... 그게 어쩌고 저쩌고"하고 거의 조영구가 만난 사람들 톤(?)으로 설명하니 내 설명을 듣던 모든 멤버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와 우리보다 많이 아시네!"

"피독 형 불후의 명곡 전설 될만하네~"하면서 마음을 더 열어주어서 더 신나게 나머지 인터뷰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방송도 물론 잘 나왔고,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밝은 에너지를 가진 멤버들에게서 오히려 내가 더 좋은 기를 받고 온 느낌이었다.


물론 BTS를 인터뷰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지만, 에너지 넘치는 멤버들에게서 예상치 못했던 그 이상의 에너지와 희망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래서 평소에 부모님이 잘 나가는(?) 친구들과 어울리라는 거구나.' 하는 뜻밖의 깨달음을 서른도 넘어서 BTS를 앞에 두고 했던 순간이었다.


피디 10년 차에도 이런 순간을 손에 꼽을 정도로 나조차 쉽게 만날 수가 없기에, 나라도 기왕이면 그런 긍정적인 파급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태생자체가 밝고 명랑하진 않지만, '저 피디를 만나면 지치고 힘들다.'라는 평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 달성이 어렵더라도 노력을 꼭 해야 한다고 BTS 선공개 영상을 몇 년 만에 다시 보며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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