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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06. 2022

엄마가 자발적 약자가 되는 이유

엄마가 되고 나니 마음이 약해졌다. 


주변에서 흔히 듣는 얘기다. 심지어 센 언니로 유명한 배윤정 씨도 엄마가 된 이후에 독설이 도저히 안 나와서 고민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전에는 나름 따박따박 할 말 잘하고 살았는데, 엄마가 된 순간부터 왜 온 세상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그 첫번째 이유. 일단, 아이는(=내 자식은) 예쁘다. 객관적으로 이목구비가 예쁘지 않아도 그렇다. 혼자서 먹지도, 앉지도 못했던 생명체가 "엄마"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어메이징이고 러블리다. 이런 아이의 존재 앞에 일단 나약해진다. 미남, 미녀에게 너그러워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 주체할 수 없는 너그러움은 내 자식뿐만 아니라 내 자식 또래의 아이, 더 나아가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이 세상의 모든 청년한테까지 뻗어간다. 


업무 중에 쓴소리 할 만한 일이 생겨도, "그래 쟤도 누군가의 귀한 아들, 딸이겠지." 하는 생각에 집어넣게 된다. 마치 내가 아들 엄마가 될 걸 예상이나 한 듯이, 나는 20대 때부터 선배가 남자 후배들을 못살게 굴면 괜히 "남의 집 귀한 아들한테 왜 그래요 선배."하고 자주 말하곤 했는데 이젠 내가 그 장본인(?)이 되었다. 


엄마가 되면 약자가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출산과 동시에 민폐 패치(?)가 자동 탑재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는 순간 내 마음대로 볼륨이 컨트롤되지 않는 생명체를 난생처음 마주하게 된다. 나도 얘가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 안 울게 하는 방법은 더 모르겠다. 그게 공공장소일 때는 더더욱 모르겠다. 누군가 눈치라도 주면 울고 싶을 정도로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주변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라 출산 이후엔 되도록 외출하지 않는 편을 택했다. 그럼에도 피치 못하게 아이와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시끄럽게 하진 않을까 일단 몸을 사리게 된다. 특히 대중교통에서 이 증상이 더 심한데, 모두가 피곤한 몸으로 올라탔을 지하철에서 나까지 피로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한 껏 긴장하고 탄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아이는 이게 뭐예요, 저건 뭐예요 질문은 기본이고 지겨우면 소리도 지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차 없이 아이를 심하게 혼내곤 했다.

기차를 세상에서 좋아하는 아이인데, "너 이러면 다시는 기차 못 타. 엄마는 너랑 다시는 같이 안 올거야"라고 해서 울기 직전까지 혼내곤 했다. 우리한텐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기차라면 모든 걸 내던지고 달려오는 아이한테는 세상이 무너지는 끔찍한 얘기였을 거다. 이런 나를 꽤 오래 지켜본 뒤 어느 날 남편이 "엄마가 그러면 이준이는 누가 지켜줘? 다신 안 볼 사람들 때문에 아이한테 상처를 주는 게 맞는 걸까?"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는 부모인데 그중 절반인 내가 차갑게 몰아세워 아이를 제어하려고 한다. 정작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 그 마음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반성하며 또 한 번 약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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