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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07. 2022

엄마 생일을 까먹어버렸다.

"추석 4일 전. 외우기 쉽지? 엄마 생일이야."


엄마가 나에게 꽤 여러 번 주문 걸듯 했던 말이다. 학창 시절에는 당연한 듯이 부모님 생일을 스킵했는데, 엄마가 '이제부터 엎드려서라도 절을 받아야겠다'고 한 순간부터 '추석 4일 전'을 강조하셨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잊지 않고 엄마 생일을 꼭 챙겼는데, 이번엔 정말 까.맣.게. 잊어버렸다. 미역국은 커녕 늦게 퇴근해서 엄마 얼굴도 못 보고, 생일인 줄도 모르고 지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젯밤에 온 엄마의 카톡.






나도 그렇지만 엄마는 원래 카톡에서 저런 애교스러운 말투를 전혀 쓰지 않는 사람이다. 주로 "응"이란 단답을 가장 많이 쓰고, 물결도 전혀 쓰지 않는다. 근데 너무 생소한 물결에 애교 말투까지 전부 있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보다 1년에 한 번 있는 생일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내가 너무 싫었다. 엄청 바쁘지도 않은데, 쓸데없는 건 잘만 챙기면서. 


바로 100만 원을 송금하고 허둥지둥 신랑도 용돈과 카톡을 보냈다. 아직 어린 아들이 보기에도 이 상황이 이상했는지 할머니한테 빨리 전화하라고 하더니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래도 찝찝한 이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서, 다음날 회사 근처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드리기로 했다. 호텔 뷔페라도 예약해볼까 했는데, 번잡스럽고 싫다고 냉면 같은 거나 먹자고 하셨다.


엄마는 왜 이렇게 안 해본 게 많은지.


"평양냉면?"

"그래, 그거 안 먹어봤으니까 이번 기회에 먹어보지 뭐."

"엥?? 평양냉면을 안 먹어봤어???!!"

"(당연하다는 듯이) 안 먹어봤지~ 내가 먹을 일이 뭐가 있니."

"평양냉면이 이런 맛이구나. 사람들이 이런 맛으로 먹는 거구나"


아이가 처음 음식을 맛보듯 눈을 빛내며 얘기하는 엄마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했다. 내친김에 한 번도 안 먹어봤다는 '뚱카롱'도 맛 보여드렸다. 배고플 때 먹으면 엄청 맛있겠다고 소녀처럼 좋아하셨다. 결혼 전에 한 때 열풍이었던 로티번을 먹다가 신랑이 "이거 부모님 한 번 사드려야 하는데."라는 얘기에, "굳이, 좋은 음식 많은데 흔한 로티번을?"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계속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내가 주문해 드렸던 기억이다. 그 후로 '단팥'을 좋아하신다는 걸 알게 되어 가끔 맛있는 단팥빵 집을 발견하면 댁으로 지금도 종종 보내드린다. 


정작 나에게는 너무 흔해 빠져서 특색 없는 음식들이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부모님들에게는 별미 중의 별미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허망하게 지나버린 엄마의 생일 다음 날. 어색하게 꽃을 건네는 나에게 "돈 들게 이런 거 뭐하러 사. 시들면 아까운데."라고 하지만,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로 이 사진으로 바뀌는 엄마. 

"너도 딸 하나 꼭 있어야 하는데."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생일 맞은 우리 엄마 미모가 풍년

내년엔 절대 잊지 않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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