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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Aug 17. 2023

단 한 번도 엄마에게 화를 안낸 첫 여행

그럼에도 굉장히 슬펐던.

처음이다.

국내는 물론, 일본, 태국, 미국 여행을 가면서도 늘 엄마한테 짜증을 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엄마에게 단 한 번도 작은 짜증도 내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엄마와 동행한 여행에서 이런 적아 처음이다.


그럼에도 마음은 가장 슬프고 힘든 여행이었다.


얼마 전 이모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나에게 소식을 전하며 "죽고 못살던 사이도 아니고 괜찮다. 더 억울하게 간 사람들도 많은데 뭐."하며 놀라지 말라고, 신경쓰지 말라고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여행 중간중간에 "에휴~"하고 짧게 쉬는 한숨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쉽게 말해 엄마에게 기분 전환과 짧게나마 쉼을 제공해주고 싶었던 이번 여행에서는 나의 인성이 똑바로 고쳐져서 짜증을 안 낸 게 아니라, 이미 슬프고 지친 사람에게 차마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슬펐다.




늘 그 간의 엄마와의 여행은 계획성 없는 내가 준비해서 갔었다.

애초에 계획자체도 잘 세울 줄 모르는 데다, 변수 가득한 여행지에 엄마를 리드하며 다니는 여행이 나에겐 긴장 그 자체고 벅찼던 것 같다.


그걸 진솔하게 "엄마 나 혼자 다 준비하고 책임지려니 너무 힘들어. 지쳐." 이렇게 표현하줄 몰라서, 괜히 애처럼 짜증을 냈다.


덥다고 짜증. 차가 늦게 온다고 짜증.

정말 치사한 건 남들한테는 들리지도 않게 엄마만 들리게 그렇게 짜증을 냈다.


매번 그렇게 싸웠음에도 엄마는 "태국 포도 농장에서 먹은 주스 진짜 맛있었는데.", "나는 미국이 참 좋더라."라고 좋은 기억만 떠올린다.


이번에는 싸움이 1도 없었지만, 사진 속 엄마가 오히려 더 슬퍼 보인다.

내내 사진을 찍어주며 물끄러미 그 표정을 들여다 보기에 내 마음도 참 힘들었다.


요즘 50대에 떠난 아빠 생각을 하며, 아빠는 정말 찰나같이 내 옆에 있다가 떠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찰나 같아서 나중엔 기억이 안 날 것 같아서 겁이 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의 떠남에는 사정과 사연이 있지만, 더욱 그랬을 이모. 그리고 가족의 떠남 앞에 무기력해진다.

그럼에도 눈물이 펑펑 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내 심연 속 슬픔의 존재의 크기가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되질 않아 더 두렵기도 하다.


떠난 사람들의 평안을 또 빌고 빌어본다.


기도할 틈이 생기면, 매번 '가족들의 몸과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지켜주세요.'라고 하는데 아직 내 기도가 많이 부족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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