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의 무게는 전혀 다르기에
일하면서 유노윤호를 처음 본 건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조연출로 일할 때였다.
바쁜 싱글대디를 대신해 유노윤호가 삼 형제를 돌보는 내용의 촬영이었다.
일단 집안일을 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로 했는데 삼 형제다 보니 빨래양이 꽤 많았다.
산더미 같은 빨래 앞에 해맑게 웃으며, "일단 우리 스태프분들도 아침부터 고생많으신데 다 같이 커피 마시고 할까요~"하더니 전 스탭에게 커피를 돌리며 파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빨래 개기에 돌입(아래 영상 참고)
https://youtu.be/Quzya_Mm-7Q?si=7zh-mkUi95fkvfS2
사실 빨래 개는 건 똑같이 반복되는 장면이고, 굳이 다 갤 필요까진 없었다. 심지어 곧 이어서 오후부터 저녁까지 촬영을 해야 하기에 이 정도만 개고 마무리하자고 했다.
그러나 절대 안 된다며, 오늘 하루 아빠가 되어 집안일을 돕기로 한 거니 제대로 해야 한다고 다 갤거라고 했다. 웃으면서 예의까지 갖춰서 우기니까(?) 나도 이길 재간이 없어서 그냥 맞은편에 앉아서 빨래 개는것만 하염없이 지켜봤다.
"삐삐빅"
급기야 고프로 꺼지는 소리까지 들리고 카메라 스태프들이 말없이 내 뒤통수를 째려보는 레이저 기운도 느껴졌지만, 그 모든걸 이겨내고(?) 그 자리에서 빨래를 기어코 다 갰던 사람. 이게 내가 일로서 만난 유노윤호의 첫인상이자 마지막 인상이다.
그리고 최근 <살림남>에서 만난 유노윤호.
<뮤직뱅크>에 컴백하던 날 잠깐 인사를 했는데
"싸인 씨디 드려야 하는데, 어쩌죠. 제가 꼭 싸인해서 보내드릴게요!."
"바쁘신데 괜찮아요~ 받은 걸로 할게요^^"
이렇게 헤어진 지 며칠.
어제 회사로 퀵이 도착했다. 엄청난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나와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니고 내가 현재 있는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나와줬을 뿐인데,
지나가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했던 싸인 씨디 약속을 끝끝내 이행(?)해버렸다.
긍정적인 평가로는 진국이라고도 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 보자면 과하다고 쉽게 비아냥대거나 얘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데뷔 20주년이 넘은 연예인이 이렇게 정성스럽게 싸인을 하고 퀵으로까지 챙겨서 씨디를 보내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내가 손만 대면 대박을 이끄는 스타피디도 아니고, 하다못해 음악 방송 피디도 아닌데 더더욱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런데 빨래를 세 시간동안 갰던 것 처럼 본인이 뱉은 말은 꼭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저렇게 했다고 생각하니, 새삼 말로 엉렁뚱땅 넘어가려는 나의 일상과 대비하게 된다.
말을 언제나 가볍고 쉽다.
지금이 제일 싼거라는 상술에 넘어가 결제해버린 헬스장 연간회원권 같다.
그러나 하루하루 헬스장 문턱에 몸뚱이를 밀어 넣는 건 정말 어렵고,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만큼 행동은 무겁고 어렵다.
그래서 정성 가득한 씨디들 바라보며 "에이 대충 인사치레 했음 됐지, 뭘 이렇게 까지 해."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나 자신의 언행을 다시금 반성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