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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10. 2022

내가 겪은 까임의 대물림 법칙

어느 날 식사자리에서 내가 아는 회사 선배님이 참 따뜻한 것 같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자 그걸 듣던 다른 선배가, "그 사람이 아래 직원을 얼마나 갈구는데, 몰랐구나?"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평소 어미새처럼 따뜻하게 이것저것 챙겨주셨던 분인데. 거의 딸뻘인 부하 직원을 독한 말로 몰아붙이는 모습이 전혀 상상 되질 않았다. 심지어 말투도 엄청 느릿느릿하신데 그 속도로 다다다 구박을 하신다니.


입사 전에 타사(CJ)에서 피디 인턴을 한 적이 있다. 말이 피디지, 끼니 때면 선배들 도시락을 카메라 가방에 넣어서 로비 청경분께 들키지 않고 배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회사 어느 곳에서도 내 존재는 0.001% 미만으로 미미하다 보니 사실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내 지분보다 '랍스터가 발을 한쪽 담근 것 같다는 평'의 랍스터 맛 라면의 랍스터 함량이 차라리 더 높았을 것이다. 의욕은 없는데 각종 심부름으로 몸은 고달프니 정말 괴로웠다. 그날도 녹화가 시작되고 틈이 생겨 구석에 잠깐 앉아 있었다. 그걸 본 선배가 말했다."주접이(가명)는 너처럼 인턴기간 때 단 한 번도 앉지 않고 내내 서있었는데, 너는 주접이랑 너무 태도부터 다르다? 나 때는 앉는 모습만 보여도 선배들이 가만 안 뒀어. 앉을 새가 어딨니."


당시 나는 계약직 신분으로 각종 가를 통과해야 정규직이 되는 시험대에 놓인 상황이었고, 선배가 나와 비교한 주접 선배는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피디 선배였다. 당시 선배가 나에게  말이 엄청난 비방이나 쌍욕은 아니었지만, 당시 나에게 확실히 아프긴 아픈 말이었다.  말에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했던 대답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죄송하다고 했었는지 아니면 그냥 어색하게 웃었었는지.


그때 '까임의 대물림 법칙'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메모장에 써놓았다. 내가 힘들었으니 마땅히 너도 그만큼 힘들기를 바라고, 아니 그래야만 일정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 내가 혹독한 상처 속에서 성장했으니 그 값진(?) 경험을 아랫사람에게 꼭 물려줘야만 한다는 신념. 단지 방송일이 하고 싶었던 나는 그 선배의 신념에 쉬이 동의가 되질 않았다. 하긴, 나는 힘들었지만 너만은 편하길 바라는 건 부모 자식 간에만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날 이후, 선배의 깊은 속뜻을 파악하는데 실패하고 그나마 남아있던 의욕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엄마가 그 몇 개월간의 나를 평가하기를 '태어나서 가장 짜증을 많이 내고 힘들어하던 때'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곳에 남지 않게 된 것이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던 선택인 것 같다. 물론, 그때는 간절히 매달려서라도 정규직이 되어서 취준생 생활을 그만하고 싶었다. 결코 거만하게 내가 그곳을 차 버리고 나온 것이 아님을 굳이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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