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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28. 2022

나는 네가 신경 쓰인다.

회사에 신경 쓰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무실 간식 통을 채워놓는 직원이 정작 본인은 나날이 마르고 어두운 표정으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것이,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후배에게 "우리 집 개도 아파서 3일 만에 죽었다."라고 태연히 얘기하는 것이,

호인으로 소문난 윗사람이 술에 취해 대리기사님을 어린아이 혼내듯 모멸감 들게 혼내는 것이,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신경 쓰인다. 이 광경이 눈과 귀에 꽉 차게 들어옴에도 정작 입을 닫고 뭔가 하지 않을 때, 나의 에너지는 급격히 소진된다. 




결혼적에 남편은 내가 엄청 신경 쓰인다고 했다.

(로맨틱한 그런 감정이 아니라, 진짜 '짜증'에 기반한 신경 쓰임이었다.)


내가 심각한 길치라서 10분이면 올 길을 한 시간 걸려 오는 것이,

지하철이 답답하다며 굳이 세 배이상 시간을 들여 고집스럽게 버스만 타는 것이,

물이 무섭다며 좋은 계곡이나 수영장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

몇 장씩 되는 긴 글을 명함만 한 아이폰4로 꾸역꾸역 쓰는 것이,

느려 터진 컴퓨터로 서류 작업하는 걸로도 모자라, 이력서를 PC방에 가서 출력하는 것이,

피디가 되고 싶음에도 합리화와 현실 부정을 반복하며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것이,

너무나 신경 쓰인다고 했다. 


나와 딱 한 가지 달랐던 점은, 보고도 침묵했던 나와는 다르게 바로 부품을 주문해 내 컴퓨터를 직접 고쳐줬고, 길을 알려주거나 차를 태워주고, 처음으로 수영장 물에 머리를 넣는 법을 알려주었다. 




정작 나는 아직도 신경 쓰이는 사람에게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내가 그만큼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당장 있는 힘없는 힘 죄다 꺼내 주는 것보다, 내가 더 나은 위치와 조건의 사람이 되고 나서 좀 더 강하고 장기적인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의 위로는 상대에게도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입을 닫게 한다. 이 조차 비겁한 합리화인 걸까. 회사에선 사람을 비즈니스로만 대해야 하는데 늘 감정이 앞서는 나는 오늘도 오락가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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