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활달한 7세 남아와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물론 아랫집도 있다. 이 아파트에 이사 오는 순간부터 남편은 분기별로 작은 선물과 함께 미리 '사과'를 해야 한다고 했다. 층간소음이라는 게 일단 피해를 보기 시작하면 그땐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그전에 미리미리 잘하자고.
그래서 이사 오기 전부터 전화도 드리고, 이사 온 첫날 아이와 함께 찾아가서 인사드리면서 미리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손사래를 치시며, "나도 아들 키워봐서 다 아는데 뭐. 애들이 다 그렇지 뭐. 신경 쓰지 마요."라고 하셨다. 하지만 긴장을 풀 순 없었다. 층간소음 피해 사례 대부분이 처음엔 '나도 자식 키워봐서 안다'로 시작해서 칼부림까지 나기도 하니까. 그만큼 극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일이고 그 가해자가 우리 아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매번 긴장하며 선물을 골랐다.
와인, 각종 건강즙 세트, 수제 양갱 세트, 홍삼 세트 등등. 지금까지 아랫집 아주머니 댁에 드린 것들이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다니는 남편 회사에서 나오는 케이팝 그룹의 굿즈 세트도 혹시 주변 어린 친척들한테는 인기가 있으려나 싶어서 가끔 드리기도 했다. 드릴 때마다 이제 그만하라고 늘 그러시는데,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다행히 몇 년간 불편함은 없으시다고 하시고, 아침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시며 만나는 우리 아이에게 유치원 잘 다녀오라고 늘 웃으며 인사해주신다.
이것만으로 이미 엄청난 큰 복을 누리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매년 추석, 늘 이렇게 직접 음식을 해서 맛보라고 가져다주신다. 방금 30분 전에도 어김없이 현관문을 두드리셨다.
맛만 봐요. 맛만.
솜씨가 없고 양도 별로 안 된다며 늘 '맛만 보라'고 하신다. 올 해는 운동을 열심히 하셨는지 훨씬 더 건강하고 아름다워지셨다. 숫기 없는 나는 그 말까진 차마 못 하고, 잘 먹겠다고 허둥지둥 인사만 겨우 했다.
내 성향이 워낙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는 편이다. 아이와 함께 산다는 이유로 그럴 일이 굉장히 많아져 한껏 예민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올해 추석도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고, 아이도 자연스럽게 아랫집 아주머니를 반갑게 바라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