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행복하고 뿌듯했던 순간을 꼽자면, 고대에 입학하고 나서 과외를 했던 20대 초반을 매번 꼽게 된다. 감히 자부하자면 나는 과외수업을 정말 '잘' 했다. 대부분 용돈 벌이로 과외하는 주변 친구들이 정말 가기 싫다며 학생 험담을 잔뜩 늘어놓을 때 난 얼른 과외날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서 '편선생'이냐는 핀잔을 들었을 정도다.
고대에서도 멀리 떨어진 남양주시에서 수진이라는 여고생 과외로 장기적인 과외는 처음 시작했는데, 마음에 들어 해 주신 학부모님이 옆 동의 다혜라는 친구를 소개해주시고, 조금 지나서 다혜의 남동생인 상은이의 수학을 가르치게 되고 그 남동생의 사촌 언니까지 맡겨주셔서 한 단지에서만 4명을 한 주에 가르치게 되었다.
감사히 또 지인까지 소개해주셔서 구리에 있는 희진이에, 왕십리에 살던 훈훈한 외모에 유머감각까지 갖춰서 늘 즐겁게 수업하게 해 주었던 준범이까지 소개받아서 가장 많을 때는 한 주에 6명을 각각 과외하다 목소리가 안 나오기도 했다.
대부분 1년 이상을 정 듬뿍 들이며 가르치다 중간에 내가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당장 친구들을 못 볼 생각에 아쉬워서, 서로는 인연이 없는 친구들이지만 고대로 다 같이 불러서 삼통 치킨도 사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고3 수험생이었던 준범이는 지금 가시면 자기 대학 입학은 어떡하냐고 하더니 정말 미국으로 전화를 해서 입학할 대학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같이 결정하기도 했다. 심지어 교환학생을 다녀오고 나서도 다혜라는 친구는 다시 영어 과외를 해주기도 했다. 그 후로 각자 결혼 소식도 전해오고, 이직 고민도 털어놓으러 오는 거 보면 나쁜 과외선생님은 아니었던 것 같다.
운이 좋아서 좋은 학부모님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왜 그렇게 몸을 갈아도 지치지 않을만큼 잘할 수 있었나 생각해 보니 또 책에 답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시절이 있다면
중2에서 중3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에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주는 책을 무협지만 빼고 다 빌려서 읽었었고,
두 번째는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도서관을 보고 입이 떡 벌어져서 정말 미친 듯이 대여해서 읽었었다.
도서관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어떤 작가로 찾아봐도 전 작품이 다 있을 정도였으니 탐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할 때는 하루에 5권도 거뜬히 읽었다.
그때가 딱 학생들이랑 과외를 하던 시기여서, 지금 생각해 보면 전해주고 싶은 살아있는 이야기들이 진짜 많았을 것이다.
거기다 배려 깊은 다혜라는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선생님 수업도 좋은데 인생 선배이자 언니로서 인생 수업도 많이 많이 해주세요~"라고 늘 격려해 주셨다.
매번 엄청 긴장하면서 수업하긴 했지만, 사실 그때 나도 스무 살을 갓 넘긴 시점이라 어리바리한 새내기였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현명하신 어머니가 먼저 더 수업보다 언니처럼 수다를 떨어달라고 얘기 해주신 것 같다.
누나들도 많고 성숙한 준범이는 "솔직히 쌤이랑 저랑 얼마 차이 안 나잖아요~"하면서 뜨끔한 마음이 들게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보기만 해도 예쁘고 귀여웠던 수진, 다혜, 상은, 현서, 희진, 준범이와 그만큼 사랑하는 책들로부터 얻은 에너지로 꽉 채워진 20대 초반이어서 더없이 행복하고 성취감 들었던 시기였다는 것을 요즘 새삼 더 느끼고 있다.
나와 인연을 맺은 소중한 아이들이 어디서든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보고 싶은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