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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May 28. 2024

팬들은 왜 글을 잘 쓸까?

팬의 팬인 편

내가 아는 팬들 대부분은 언변이 좋고 글을 잘 쓴다. 

나도 여전히 팬임을 자처하는 사람이지만 절대 내 자랑은 아니다.


오늘도 우연히 NCT의 팬이 쓴 글을 읽게 됐는데, 눈물이 핑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이 글을 보며 문득 팬들은 왜 대체로 글을 잘 쓰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1. 마음을 받기보다 잘 표현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팬이라는 위치 자체가 애정을 받기보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입장이기에 글쓰기에 유리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표현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단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좋아할 만한 단어를 고르고 심사숙고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표현력이 기본이 되는 글솜씨가 늘 거라고 추측해 본다.


2. 각종 이벤트를 기획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팬심은 우아하게 담은 채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주머니 속 송곳 같은 뾰족한 마음이다. 극성이라고 손가락질받더라도 결국 들끓다 못해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함성으로 나오지 못하더라도 신박한 아이디어로라도 나온다. 실제로 중학교 때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극성팬이었는데, 거의 분 단위로 아이디어가 미친 듯이 떠올랐다.


이 열정이 반영됐는지, 사연을 보내는 족족 베스트 사연에 뽑히다 못해, 해당 방송 작가에게 연락이 와서 코너도 짜보라는 제안도 받고 당시 엄청 인기였던 지오디 같은 가수들의 사인시디를 최우선적으로 받기도 했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세월이 흘러 방송국에서 자연스럽게 일하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한다.


3. 팬들을 화나게 하는 일들이 많다.


분노나 화 같은 뜨거운 감정 또 팬이라면 필연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감정이다. 아티스트나 특정 대상에 애정을 갖다 보면 일반인을 발견하지 못하는 허점과 분노 포인트들이 날 선 팬의 눈에는 들어온다. 그럴 때면 시정될 수 있도록 클레임을 걸어야 하는데 이럴 때는 설득을 위한 엄청나게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다. 상대는 대형 엔터사나 기업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설픈 치기 어린 표현은 금물이다. 이런 일(?)을 일삼다 보면 자연스럽게 남다른 필력과 논리가 생기지 않나 싶다. 




결론은 무언가에 미쳐본 사람이 글도 잘 쓰고 말도 잘한다.

실제로 내가 만나본 팬들은 대부분 달변가였다. 누가 누군지 헷갈릴 정도로 재치 있고 재밌었다. 


<주접이 풍년>이란 프로그램으로 만났던 팬들도 전부 그랬다.

누군가를 본인 스스로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를 만큼 좋아할 때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를 갖고 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혹자는 극성이자 쓸모없는 일로 매도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희귀한 능력을 자체적으로 품고 있는 팬들을 보는 시선이 조금은 너그러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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