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공포 이겨내기
이전에 달리기의 공포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그깟 달리는 게 무슨 공포까지 들먹으며 호들갑인가 싶지만
애초에 운동신경 없는 몸으로 정적인 몸가짐으로 살아왔는데,
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신호탄이 탕! 하고 울리면 달려가서 바로 내 눈앞에서 매겨지는 등수와 좌절감과 동시에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피맛까지. 그 모든 게 공포스러웠다.
어차피 1등을 못할 건데 그냥 즐길 순 없었냐 하면, 그 와중에 또 이기고는 싶었나 보다.
달리고 나서도 내내 기분이 안 좋고, 달리기 시합 전에 불쾌하게 심장이 쿵쿵댔던걸 보면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트레이너가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라고 해도,“내가?”하는 생각으로 걷다 뛰다를 반복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3주 전.
달리기와 다이어트를 기본으로 한 자세개선에 의지가 불타올랐고, 그 타이밍에 크로스핏 코치님도
와드 끝나고 10분이라도 박스에 있는 무동력 트레드밀을 뛰어보라고 했다.
그동안은 시도도 안해봤으니 한 번 해보라고 해서 했는데, 무동력 트레드밀이다보니 내 맘대로 속도 조절이 쉽지 않으니 엄청 긴장이 됐다.
헬스클럽에 필수로 있는 그 흔한 티브이도 속도조절기도 없으니 정말 이 기계를 조절할 수 있는 건 내 몸뚱이 하나였다.
첫날은 10분으로 시작해 20분->40분->45분->50분으로 야금야금 시간을 소심하게 늘려봤다.
사실 달리기에 엄두도 내지 못했던 나에게 쉬지 않고 50분을 뛰는 건 굉장한 기록이었다.
물론 달리는 자세부터 신경 쓴다면 아직 많이 부족하겠지만, 나도 어엿한(?) 달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신기하다.
늘 뛰어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엄두가 안 났는데, 오히려 뛰고 나니 바른 자세로 효율적으로 잘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발전엔 끝이 없지만, 편안하게 고여있자고 하면 또 고여있는 것에도 끝이 없다.
그래서 두렵기도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남편은 나에게 책 읽기를 잠정적으로 중단할 것을 권했다.
일상의 모든 여가 시간에 책만 읽은 지 수십 년이다 보니 오히려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것에 안주하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에게 편한 것 말고 오히려 어렵고 부족한 부분, 예를 들면 내 업과도 직결되어 있지만 감은 물론 공부가 부족한 영상미, 컬러감에 대한 공부에 시간을 투자해 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어느새 오늘도 여유가 생기자마자 책을 펼쳐드는 나를 보며, 익숙한 것에만 기대어 고여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책을 읽다 못해(?) 출간까지 하게 되었으니, 달리기가 나에게 그랬듯 잠시라도 낯선 것에 주의를 기울여보라는 조언을 새겨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