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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보다 나은 딴짓을 찾지 못해서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_권은주 지음

by 편은지 피디


약 세 달째 매일 뛰고 있다.

정확히는 6월에는 6일을 빠졌고, 7월에는 하루를 빠졌고, 8월은 아직까지 지켜나가고 있다.


전혀 계획적은 편은 아닌데,

시작하면 기록과 개근에 좀 집착하는 편이라 런데이 어플에 매우 애착하는 중이다.


사실 전혀 운동 신경이 있지도 않고, 즐길 만큼 잘하지도 못하는데

굳이 매일 달리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결론은

달리는 것보다 나은 딴짓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리지 않는다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쇼츠를 보거나, 시답잖은 메시지들에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할 것이다.

그럴 바에는 달리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판단이 늘 서는 것이다.


실제로 달리면서 아주 작은 통찰이라도 없던 적이 없다.

해결되지 않던 고민도 실마리가 잡히고, 너무 미웠던 사람도 ‘그럴 수 있겠구나’하는 입장으로 돌아선다.


이마저 없는 날엔 최소한 과거에 행복했던 기억이라도 떠올리게 된다.

어젯밤에 비를 잔뜩 맞으며 처음으로 말로만 듣던 ‘우중런’을 했는데,

과거에 비 오던 날에 대한 새삼스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알고리즘을 잠식해 간 달리기.

그리고 권은주 감독이라는 분을 동기인 방글이 피디가 연출한 프로그램에서 처음 보게 되었다.


달리기 코치로 소개되었는데 너무도 가녀린 다리에 눈이 갔다.

저 가녀린 다리로 한국을 대표해서 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더불어 나도 계속 달리면 저렇게 군더더기 없는 다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가려리지만 정말 필요한 근육들만 자리한 노력의 상징과도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달리기는 할수록 솔직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뭐라도 먹었을 때는 5km가 채 안되어 옆구리가 아파오고,

깨끗한 음식과 공복을 유지했을 때는 10km도 기쁘게 뛸 수 있다.


그리고 몸을 풀지 않고 매일 뛰면 시위하듯 종아리가 아파온다.

아끼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지만,

권한다고 하지 않을 것을 나도 그랬듯 너무 알기에 아깝고 애틋하기도 하다.


그리고 책에서 기억에 남았던 권은주 감독의 문장.


어린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적극적으로 자신 있게 해”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그 나이대에는 그때만이 누리는 감정선이 있고 기질이 있으므로 스스로 알아가도록 돕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에게도 “창피해하지 말고 하세요”라고 하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속도를 찾아 나아진다고 말하기를 택합니다.
그리고 지금의 속도를 응원하는 편을 택합니다.

본인 또한 내성적인 성향의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감히 “적극적으로 해!”라고 요구하는 건 부담이나 상처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아무리 선의로 한 조언이었어도 듣는 사람을 무안하게 해선 안되니 말이다.


나는 오늘 아침 5km를 달리다가 예상치 못하게 벌에 쏘였다.

아직도 쏘인 곳이 얼얼하지만, 잘 회복해 밤에도 좋은 공기를 마시며 달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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