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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러닝으로 도배됐다.

러닝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by 편은지 피디

나는 자칭타칭 못 뛰는 인간이었다.

달리기가 싫어진 건 학창 시절에 모래 운동장을 뛰며 목에서 피맛을 봤기 때문이다.


활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이었던 나는

모두를 시작점에 세워두고 호루라기를 삑 불어 동시에 달리게 하는 것 자체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부담스럽고 공포스러웠다.


그때는 그 이유에 관해서 까진 골몰하지 않았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어차피 내가 잘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망신당할 것이 뻔하기에.'

간절히 피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호루라기 소리 한 번에 무력화되는 것에 대한 부담과 공포였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나는 내 생각보다 꽤나 승부욕 강한 인간이었나 보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것을 실제로 이기지 못할까 봐 현기증까지 날 정도였다니 말이다.


그런 내가 달리게 된 것은 순전히 달성되지 않은 다이어트 때문이다.

헬스, 크로스핏 모두 해보았지만 결국 체중계의 숫자를 바꾸는 건 온전히 내 체중을 달고(?) 달리는 일이었다.


아무리 없는 운동신경으로 기술들을 배워보아도 밖에 나가 무식하게 달리고 오는 것만 못했다.

그렇게 거의 매일 뛰다 보니 10km 정도는 큰 무리 없이 뛸 정도가 되었다.


러닝법, 러닝 다이어트, 러닝화, 러닝 코스 등등

어느새 나의 유튜브, SNS 알고리즘은 러닝으로 도배되었다.


신호탄 소리만 들어도 어지럽던 내가 이제는 트레이너에게 운동 좀 그만하라는 얘기도 듣는다.


헬스장 안까지 들어가는 것 자체가 초인적 의지가 필요한 것에 공감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실 러닝 하러 신나서 나간 적은 많지 않다.


그러나 막상 나가서 내 무게를 온전히 달고 곳곳의 존재하는 지방들을 느끼며 달리면서 늘 이런 생각이 든다.


"러닝을 20대에 했었더라면 정신적으로 덜 힘들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다.


달리기를 더 어릴 때 알았더라면 내가 겪었던 심리적 어려움의 대부분은 해결됐을 것만 같다.

생각보다 무식하고 단순하게 몸을 굴려대는 게 머릿속을 정화해 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물론 아마 그 당시에도 그렇게 고민하지 말고 나가서 뛰라는 얘기를 누군가는 나에게 해주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러닝을 권하면 대부분이 그러하듯, 나 또한 내가 뛰는 것을 얼마나 극도로 싫어하는지 나의 그 지난한 역사에 대해 읊어댔을 것이다.


아무도 관심 없는 내 역사를 되짚기 전에 그냥 한 번 속는셈치고 달려볼걸.

꽤 많이 늦은 후회가 든다.


물론 길게 반복됐던 답답한 고민 속에서,

나 또한 타인의 고민에 관심과 촉각이 곤두 선 사람이 된 장점 아닌 장점도 있지만 말이다.


난 나보다 운동을 못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협한 생각으로 너무 오래 살았었다.

그것은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고집스럽게 믿었다.


그런데 운동을 시작하고 정말 얼마 안 되어 얼마나 좁은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생각보다 나처럼 매일 체육관을 찾는 이들도 없고,

꾸준히 10km를 달리는 이들도 없다는 걸 직접 내 눈으로 몸으로 부딪히고서야 알았다.


그게 무엇이든 그 현장에 내 몸을 밀어 넣고 시작하는 모든 것은 위대하다.

그리고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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