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음악프로를 연출 중인 선배랑 점심을 먹었다. 훈훈한 근황 토크를 나누다가, 선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난 요즘 예능을 아예 안 봐. 다 재미가 없더라고
이제 관찰 예능도 지겹고 리얼 버라이어티도 지겹고 결국엔 미국처럼 극 소수의 토크쇼랑 음악프로그램, 몇몇 시각적 자극이 강한 프로그램류만 남고 다 사라지는 건 아니냐는 얘기를 했다.
최근에 스트레이 키즈라는 팀에 빠졌다. 최근 콘텐츠부터 한 두 개씩 보다가 아예 데뷔 전 뽀시래기 시절 모습부터 다시 보니 내가 데뷔시킨 것도 아닌데 그 감동이 장난이 아니다. 방송국이 아닌 소속사에서 만든 자체 콘텐츠도 몇 년치가 차곡차곡 쌓여있어서 두고두고 볼 생각에 짜릿하다가 문득 등골이 오싹해졌다. 굳이 이들에겐 지상파 예능 출연이 앞으로도 필요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체 콘텐츠 상에서 공고한 팬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세계관을 확장시켜서 언제든지 뭐든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열어주는 브이라이브는 더 재미있다. 편집 없이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기 때문에 실시간 브이 라이브에 꽂힌 이후로는 촘촘히 편집되어 자막까지 들어간 예능프로그램이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재미가 없다. 심지어 멤버들 전원의 캐릭터가 명확해서 멤버끼리 ZOOM 미팅만 하는데도 재미있다. 렉 걸려서 중간에 화면이 끊기는 게 그렇게 재밌을 일인가? (유튜브 링크 참고)
야, 요새 재미있는 게 진짜 없지 않냐?
입덕 하니까 재밌던데요.
이렇게라도 재미를 찾아서 다행인가. 나는 여전히 티비도 좋아하고, 웃긴 건 더 좋아한다. 예전에 CJ 피디 인턴 면접 때였나, '(네가 쓴 그 기획안이) 확실한 웃음을 보장할 거라고 생각하냐'는 압박 질문에 "배 잡고 떼굴떼굴 구르는 것만이 예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꼭 소리 내어 웃지 않아도, '아 나도 저러는데.'라고 혼자 소심하게 공감할 수 있는 예능도 충분히 가치 있는 예능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입만 산 대답을 한 적이 있었는데. 웬걸 이 친구들은 나를 구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