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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Oct 22. 2022

에버랜드가 싫어진 이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놀이동산 마니아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단어가 롯데월드, 에버랜드다.

출처: 에버랜드 공식 홈페이지

나에겐 성지와도 같은 에버랜드에 어제 몇 년 만에 다녀왔다. 달라진 점은 주로 친구들과 왔던 그곳에 120cm가 조금 넘는 아이를 대동하고 왔다는 점이다. 입구의 큰 나무를 보고 미친 듯 심장이 뛰는 것 까진 같았다.


그리고 대망의 놀이기구. 개인적으로 티 익스프레스 같은 스릴있는 종류를 엄청 좋아하는데 내가 탈 수 있는 건, 붕붕카, 날으는 코끼리(?) 정도였다. 사실 외형이 코끼리 모양이냐 비행기냐, 자동차냐의 차이일 뿐 전부 낮은 높이에서 느리게 빙빙 도는 원리의 놀이기구 들이었다. (참고로 빙글빙글 도는걸 가장 못 견디는 편이다.)





‘겁 많은’ 120cm 신장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선택지는 두 가지로 압축됐다.


1) 영혼 없이 같이 타거나

2) 출구에서 기다리며 손을 50번 정도 흔들어주거나


나는 1번 옵션을 택했고, 똑같은 1번 행위를 해질 때까지 반복하고 나니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나도 모르게 "이제 탈 거 다 탔으니 가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충격적이었다. 늘 개장시간에 들어가 불꽃놀이와 레이저 쇼를 보고 폐장 때 나오는걸 신념처럼 지키고 살아왔는데. 내가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나에게 해서 철없던 나를 엉엉 울게 만들었던 그 멘트와 똑같은 세상 지친 표정이 동시에 나왔다.


"제발 좀 가자 좀."


'애 엄마'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건 아니지만, 이럴 때면 내가 일방적으로 양보와 희생을 해야 하는 포지션에 있어야 함이 체감되곤 한다. 눈앞에 티 익스프레스 같은 놀이기구를 눈앞에 두고 조악하게 오르내리는 유아용 비행기를 타며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는다.


'아 이제 내 맘대로 저거 탈 수 없는 거구나.'


마음 같아선 100분이고 200분이고 기다려서라도 타고 싶은데. 내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에 나오는 가요마저도 설레고 좋았던 10,20대 시절을 떠올리며 가을바람 탓인지 괜히 아득해진다.


출산을 고민 중인 놀이동산 마니아들에게, ‘눈앞에 놀이기구를 보고도 통 크게 단념할 수 있는가.'도 판단 기준 중에 하나로 넣어서 꼭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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