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은지 피디 Oct 26. 2022

엄마 똥 쌌다고 얘기하면 안 돼?

눈물겨운 아이의 유치원 생활(?) 고군분투기

아침 8시 20분에 등원 버스를 탄 후 온종일 유치원에서 지내는 아이. 짠하고 미안한 마음에 자기 전에 침대에서 짧게라도 아이와 단 둘이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오래전부터 대화 설정을 '엄마=비밀을 지켜주는 친구'라고 해와서 아이도 그대로 믿고 속 얘기를 해준다.


가끔은 너무 솔직한 얘기가 나와서 초보 엄마로서 심장이 철렁할 때도 있다. 가령 "미술 선생님이 나보고 못생겼다고 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이유도 안 듣고 눈물이 왈칵 나기도 했다. 요즘은 무탈한가 싶었는데, 어제 갑자기 아이가 말했다.


"내일부터 유치원 안 가고 싶어 졌어. 안 갈래."


심장이 내려앉는다. 이유를 물으니, 친구한테 자기 딴엔 재밌는 얘기를 해했는데, "알거든!"이라고 말하며 웃지도 않았는데 그게 너무 속상했다는 것. 또래에 비해 생일도 늦고, 언어 발달도 늦은 편이라 동급생이어도 우리 아이의 말이 유치하게 들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한테는 친구들이 그렇게 자기를 대하는 게 유치원을 가기 싫을 만큼 속상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기분을 풀어주려고, 아이가 좋아하는 '본인이 뱃속에 있었을 때' 얘기를 해줬다. 아기를 낳을 때 영차 힘을 줬다 이런 얘기가 나왔다가 7세 남아들의 최애 소재 '똥'까지 가게 됐고,

"그럼 아기랑 같이 똥도 나왔어?"라는 질문에, 내가 잠시 당황하자 아이는 눈을 빛내며,


"친구들한테 엄마 똥 쌌다고 얘기해도 돼??"라고 물었다.

"에이, 그럼 엄마가 창피하지. 비밀로 해 줘."라고 했는데, 쉽게 수긍하던 여느 때와 다르게 "난 꼭 말하고 싶은데. 힝~"이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다 우연히 하게 된 담임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우리 엄마 똥 쌌다."이런 얘기를 하면 빵빵 터진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우리 아이도 무시당하지 않고, 100%의 타율로 아이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로 '엄마의 똥'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엄마 창피하니까 하지 말라는 말에도 평소와 다르게 '꼭 얘기하고 싶다'라고 우겼던 것이다. 어른인 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내 말이 잠시라도 무시당하면 하루를 망칠 정도로 속상한데, 아직 경험치가 없는 아이는 오죽했을까 싶다. 


너무도 안타깝지만 잘 헤쳐나가길 마음으로 응원할 뿐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괜히 장난반 허세반으로 "에이 안 되겠다. 엄마가 바다반 가서 나쁘게 말한 친구들 다 혼내줘야겠다."라고 말했더니, 손사래를 치며 "안 돼. 여자 친구들은 착한데 여자 친구까지 혼내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진지하게 나를 말리는 아이. 스무 명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의 또래 생활은 얼마나 치열할까 싶다. 


"이준이 오늘도 유치원도 가고 태권도도 가고 구몬도 하고 진짜 진짜 힘들었지. 너무 대단해. 고생했어."

아이에게 얼마나 와닿을지 모르겠지만 자기 전에 늘 해주는 말이다. 사실 더 좋은 말이 떠올랐으면 좋겠다. 미안해.

작가의 이전글 에버랜드가 싫어진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