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저는, 안 아프고 안 피곤합니다
(미연에 오해를 막고자) 내가 재직 중인 한국방송공사의 정책상 직원들의 메이크업이 필수는 아니다. 평소 근무복장도 자유로운 편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가벼운 복장과 노메이크업으로 출근했다. 회사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들고 사무실로 가는 데까진 상쾌했다.
사무실에 도착하니 업무 논의를 하려 팀 작가가 다가온다.
“에고,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악의가 1도 없고 정말 내 안색이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잠시 후 또 다른 직원이 다가온다.
“뭔 일 없지? 얼굴이 안 좋네.”
'엥 나는 너무도 건강한 상태인데... 많이 안 좋은가.' 싶은 생각이 드는 찰나, 또 다른 선배가 다가온다.
“너 얼굴이 왜 그렇게 까매?
엇, 이건 참신한 멘트다. 피곤해 보인다는 말은 노메이크업일 때 n번 정도 들어서 익숙한데 원래 까만 피부인데 왜 까맣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미처 준비가 안됐다.
참신한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왜 까맣냐는 질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지금 제 마음이 까매서요.”라는 이상한 답변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럴 마음은 전혀 아니었는데.
가끔 이런 고민을 토로하면 남편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냥 '날씨가 춥네요' 같은 느낌으로 딱히 할 말이 없어서 한 말이며 너한테 그런 말 한 것조차 잊어버렸을 거라고 신경을 끄라고 한다. 그게 안된다면 똑같이 질문으로 응수하라고 한다.
선배로부터 "너 얼굴이 왜 이렇게 까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지체 없이 바로
나: 선배 얼굴은 왜 그래요?
이런 식으로. 그런데 재빨리 이렇게 잘 되질 않는다. 차라리 메이크업을 충실히 하는 게 더 신속할 것 같다.
어릴 때, 엄마가 ‘어디 아프냐, 피곤하냐’는 말 듣기 싫어서 화장한다는 말이 딱히 이해가 안 됐는데, 나도 이제는 그런 나이가 됐나 보다.
그냥 ‘쟤도 오늘은 편하게 출근하고 싶었나 보다’ 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까...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