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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J크로닌워너비 Apr 23. 2023

봄날의 우울

봄비를 맞으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쏟아지는 어느 봄날의 산책로를 걷습니다. 어디선가 ‘누구 없나요? 나를 찾아주세요, 제발.’ 이란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어린 묘목이 빗속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슬픔 사이로, 빗속에 흐려진 당신의 실루엣이 이 연약한 생명에 겹쳐 보이는 듯합니다.


알고 계신가요? 우울한 이들은 가장 차가운 겨울이 아니라 봄에 극단적인 선택을 많이 한답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혹독한 겨울이 아닌,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고 꽃이 피는 봄에 말입니다. 아마 겨울에는 모두가 얼어있지만, 남들이 해동을 맞이하는 봄에 나 혼자 얼어있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서가 아닐까요. 그렇게 가장 싱그러운 봄에, 누군가의 숨은 잦아듭니다. 하늘 역시 봄비를 통해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저 역시 죽음을 생각했었기에, 당신의 모든 우울을 감히 이해한다 할 수는 없지만 그 아득함과 절망은 어느 정도 느껴봤습니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것 같은 허무함, 살아갈 이유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많은 것 같은 좌절감, 세상 모두가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공포감이 듭니다. 마음이 그런 생각으로 가득하면, 죽음을 떠올리지 않기란 힘든 일입니다.


힘든 당신에게는 이 글이 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적어보려 합니다. 당신의 힘들고 서러운 순간들 모두, 꼭 끌어안고 싶습니다. 세상의 풍파로 인해 앙상하게 드러난 뿌리, 그 연약한 속살을 흙으로 꼼꼼히 덮어주고 싶습니다. 실감 나지 않으실 수 있겠지만, 차갑고 냉혹해 보이는 세상에도 분명히 따스함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 필요한 것은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당신의 용기뿐입니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울증은 구부러진 터널과도 같다고요. 아무리 우울증에서 탈출하려고 끊임없이 걸어가도, 구부러진 터널의 출구 앞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빛이 없는 어둠을 계속 걸어가야만 합니다, 때문에 우울증 환자들이 치료 도중에 많이들 좌절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저 역시 이 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어떻게 해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늪처럼, 능력자도 빠져나가기 힘든 이 진창에서 나 같은 나약한 이가 빠져나가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자문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제게 가장 핵심적으로 필요했던 건 용기, 그뿐이었습니다. 아무리 끝이 없어 보이고 절대 낫지 않을 것 같은 공포감에 맞서는 용기. 넘어진 상태에서 일어날지라도 삶의 진창에 다시금 구를 것이라는 좌절감에 맞서는 용기. 그리하여 구부러진 터널을 끝까지 완주할, 그런 용기. 봄이 왔다고 할지라도, 새벽녘은 아직 춥습니다. 제 글은 당신의 어두운 새벽에 용기라는 해가 마음의 중천에 떠올라 당신의 세계를 밝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당신의 용기를 응원하는 작은 손길이 여기 존재함을 아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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