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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J크로닌워너비 Apr 21. 2023

꿈의 해석

우울했던 시기의 악몽을 회상하며

간밤에 재밌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의 저는 어떤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께 수천만 원 가격의 시계를 사드리고는 향후 2년 동안 백만 원이 넘는 할부금을 매달 갚아나가는 선택을 했습니다. 이틀 전에 첫 출근을 해서 경제적인 독립이 가까워져서일까요? 깨어난 후 맨 정신으로 생각하니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만, 뭔가 아버지께 감사함과 존경을 표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긴 합니다. 꿈은 빠르게 휘발되니까, 사라지기 전에 얼른 말씀드렸더니 아버지께선 “어이구, 꿈이라도 고맙다.”라고 말씀하셨죠.


출근하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꿈에 대해 생각에 잠깁니다. 꿈이란 건 솜사탕과 비슷합니다. 잠에 들어 꿈을 꾸는 과정은 악몽을 꾸지 않는 한, 솜사탕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또한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깨어나면 현실이란 물에 닿아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도 솜사탕과 비슷하죠. 무엇보다도, 솜사탕은 말랑말랑하기에 만지작거리면 모양이 잘 변한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때문에 어떤 용기에 솜사탕을 담느냐에 따라 솜사탕의 모양이 달라지곤 하죠. 이 부분 역시 꿈과 비슷하네요. ‘꿈보다 해몽’이라는 속담이 말하듯이, 어떤 틀로 꿈을 바라보는지, 다시 말해 어떤 방식으로 꿈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조건 좋은 쪽으로 꿈을 해석하고자 하는 경향을 가집니다. 특정 동물이 나오는 꿈을 꾸면 복권을 사야 한다던가, 좋은 꿈은 돈을 줘도 팔지 말아야 한다던가. 길몽에 대해선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말들을 하곤 하죠. 한데 나쁜 꿈에 대해서는 꿈은 반대니까 좋은 일이 생길 거다, 이렇게 얘기해요. 어떤 꿈을 꾸든 이를 해석하면 긍정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답이 정해져 있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겁니다.


모든 꿈에 대해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신호’라고 생각하고 말 것이라면, 꿈을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요? 정신분석의 대가이자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 저자인 프로이트, 그리고 분석심리학의 대가이자 <기억, 꿈, 사상(Memories, Dreams, Reflections)> 저자인 칼 융은 공통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두 사람의 해석에는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꿈에 대해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억압된 소망이나 욕망이 표출되는 장소로 보았고, 융은 의식에서 인지되지 않는 정신의 부분이 보상적으로 나타나 무의식의 힘이 창조적으로 발휘되는 공간으로 이해했습니다. 결은 약간 다르지만, 두 명의 거인 모두 꿈을 우리가 잘 모르는 스스로의 모습, 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프로이트의 해석에 더 공감하는 편입니다.


물론, 꿈에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있다고는 하지만 쉽게 와닿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정신분석이 쇠퇴하고 있는 현대정신의학의 관점에서도 꿈은 그저 REM 수면 중에 발생하는 뇌 활동의 파편으로 취급됩니다. 제가 꾼 꿈 중에서도 의미가 없는 꿈, 소위 말하는 ‘개꿈’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중인지, 나의 어떤 부분이 억압되고 있었는지 발견하는 계기가 된 ‘의미 있는’ 꿈 역시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럼 의미가 담긴 꿈과 별 의미가 없는 꿈의 차이는 뭘까요? 제 경험으로 비추어 봤을 때, 꿈을 꾸면서 ‘특정 대상’에 대해 ‘강렬한 감정’이 느껴지는지의 여부가 감별의 핵심입니다.


제게 의미 있던 꿈의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고 우울하던 때, 아직도 기억에 남는 악몽을 꾼 기억이 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어두운 동굴 속을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뒤편에서부터 벽이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사방에서 벽이 저에게 점점 다가와 끝내는 서있을 공간조차 없어졌고, 압착되기 직전의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습니다. 그 공포와 섬뜩함이 만 3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날 정도이니, 무의식에 뭔가 있었음은 분명합니다.


당시에는 이 꿈의 의미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의대 공부를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고, 학업 스트레스를 전혀 해소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항상 공허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맛있는 것을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지만, 비만인 상태였기에 다이어트를 한다고 항상 배고픔을 달고 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채무를 스트레스로 비유하자면 저는 카드빚을 다른 카드로 돌려막으며 그저 버티기만 할 뿐인 상태였습니다.


지금은 그 꿈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스트레스가 꾸준히 쌓이고 있는데 해소는 못하겠고 어떻게든 의대에서 유급 안 당하게 버텨야 하는 상황이니, 저는 그저 받는 모든 스트레스를 무의식 한 편에 버려둔 채 나 몰라라 할 뿐이었습니다. 때문에 무의식이 제게 꿈을 통해 경고를 보낸 겁니다. 지금 나는 숨구멍을 막은 채 전력질주를 하고 있다고. 여기서 숨구멍을 열어야 한다고, 이대로 더 달리면 탈진해서 번아웃이 오거나 죽을 것이라고. 


실제로 저는 그 이후에 자살 생각에 시달렸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수업을 땡땡이치고 하루 종일 누워있기도 하고, 이인증을 경험했으며, 시간 감각마저 사라지는 중증의 주요우울장애를 경험했습니다. 결국 버티다 못해 휴학을 결정했고요. 아마 그 시기에 휴학하지 않았다면, 글을 쓰며 이 경험을 적는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만약 당시의 제가 꿈을 분석할 줄 알았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제 상태를 조금이나마 조기에 진단하여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제 꿈에 관한 경험을 기억하시고, 독자 여러분도 강렬한 꿈을 꾸었다면 그에 대한 분석을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강렬한 인상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면, 다음 과정을 통해서 꿈을 분석해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첫째, 꿈이 휘발되기 전에 구체적으로 적어놓으세요. 그 후에 꿈에 나왔던 물체들에 대해 연상되는 모든 생각과 감정을 추가로 적으세요. 이때, 가능한 자유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뭐든지 좋게 해석하려는 경향을 버리시고 최대한 중립적으로, 객관적으로,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연상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다음엔 연상된 이미지들을 내면의 생각과 감정에 이어 보는 겁니다. 평소에 하던 가벼운 것들부터 내면 가장 깊숙이 있는 무거운 것들까지 말입니다. 


이렇게 써놓은 것들을 바탕으로 꿈을 해석하면 꽤나 상징적입니다(<기생충>에서 송강호 배우 대사 톤으로). 제 케이스도 그렇고, 프로이트나 융이 하는 얘기도 마찬가지인데, 결국 꿈은 내면의 무의식이 상징을 통해 발현되는 것입니다. 그 상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책이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나 융의 <꿈의 분석>인 것이죠. 어떤 책을 택하여 꿈을 해석하든 간에, 지레짐작으로 ‘얼추 이런 뜻일 거야’ 같은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자유롭게, 하지만 중립적으로, 상징들이 보여주는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도 스스로의 꿈을 통하여 자신에 대해 알아갈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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