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기찬 Sep 14. 2022

낮달처럼 투명한

당신의 섬이 보여요


유리병 하나를 주웠다. “당신의 섬이 보여요. 토끼를 닮았어요.”라고 적힌 종이가 들어있었다. 양 볼이 화끈거렸다. 누가 쓴 건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글씨를 읽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흥분되었다. 흥, 토끼를 닮았다니. 호랑인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어디서 왔을까. 근처에 다른 섬은 없을 텐데. 기약 없던 편지는 신기할 정도로 뭉클했다. 이 글씨는 내가 없는 어떤 곳에서 쓰여져, 나와는 관계없는 어떤 이의 손을 거쳐,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병을 타고 이곳에 도착해 끝내 이 목소리를 내게 보여준 것이리라. 낯설음은 그리움이 되어 한 줄의 답장을 남겼다. 받는 주소는 비워둔 채 바다에 우편을 부쳤다. 당신은 누구이고 어디에 있습니까.


며칠이 지났지만 유리병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내게 쓴 편지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 또 며칠이 지났다. 마음이 지쳐서 더 이상 기다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고 나서는 이전의 모든 날들처럼 어제와 같은 오늘이 어제와 같이 시작됐다. 매일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똑같은 하루의 반복은 어디서나 지치는 일이겠지만, 이것은 동시에 꿈과 같은 비현실의 냄새를 풍겼다. 시간은 일방향의 직선이라서 정말로 똑같은 하루는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그 수많은 날들의 차이를 삭제하고 반복성만을 남겨둔 것은 무서웠던 꿈에서 막 깼을 때의 다행스러운 몽롱함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스스로 선택한 반복의 반복에서 끝내 싫증을 내버린, 가장 인간다운 투정이 아닐까.


자신이 충분히 잊혀졌을 때 유리병은 다시 찾아왔다. 양쪽 광대를 잔뜩 올리고는 조심스럽게 답장을 꺼내 읽었다. '당신은 누구이고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 내 글씨였다.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푸우 내쉬었다. 한편으론 후련했다. 병 속에 두고 온 감정은 이제 없으니. 그 날 수면 아래서 떠오른 행복과 불행은 모두 나의 것이 되었다. 섬에 살다보면 많은 것들이 떠밀려온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비롯한 온갖 인공물. 그것에 잡아먹힌 바다 생물들. 언젠가 무심코 버렸을 나의 것들이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온 것이다. 주인 모를 원망과 죄책감이 소리없이 자라났다. 내가 해야할 일은 그들을 책임지고 묻어주는 것. 유리병을 들고 버려진 해변을 찾았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잊혀진 사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뭉툭한 크레파스, 보라색 리코더, 6학년 2학기 일기장 그리고 유리병들. 종이학으로 꽉 찬 누구의 병처럼 해변은 유리병으로 가득 차있었다. 보내지지 않은 편지를 훔쳐 보는 일은 하지 않았다. 투명해진 유리병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왔다.


유리병은 깨끗이 씻어 식기건조대에 올려두었다. 꽃병으로 쓸 생각이다. 그러면 잊어버리지 않겠지. 어떤 기억은 빈 병 속에서 자라나 문득 꽃을 피우기도 한다. 하지못한 말들이 있다고. 백일홍, 능소화, 수국, 라일락 … 엄마가 물려준 예쁜 이름들이 그렇다. 무슨 꽃이 피었다고 저 꽃 이름은 아냐고 물어보는, 도통 관심이 안 가던 엄마 목소리가 지금 보고싶어 졌다.


***


모두가 분주히 익어가는 여름이었다. 그냥, 정말로 아무런 이유 없이 집에 와버렸다. 평일 오후의 거실엔 따뜻한 적막이, 덜 개어진 빨래더미가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아 정말 집이구나싶은 풍경. 자취방의 편함과는 다른 냄새의 편안함이었다. 그대로 소파에 쓰러져 일 분 정도 눈을 감고 가만히 있다가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집에 왔다고.


왜 말도 안하고 왔어~

그냥, 이번 주말에 뭐 없어서.

저녁은? 먹고 왔어?

아직 안 먹었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몰라~ 맛있는 거.

우리 아들은 맨날 모른대~ 외식할까?

그럴까?

응, 이따 전화하면 내려와.


조수석에서 엄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 풀린 파마결, 부쩍 늘은 흰머리, 살도 조금 빠졌나. 그새 달라진 건지 이제야 보이는 건지. 조용히 머리칼을 귓바퀴 뒤로 넘겨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밝은 갈색의 눈동자. 아직은 쉰이라는 숫자가 어색하다. 엄마, 파마 해야겠다. 염색도. 중요하지 않은 말만 늘어놓았다. 정작 마음이 시키는 말은 꺼내지 못한 채. 그러나 오늘도 엄마는


아들, 저 꽃 이름이 뭐게? 저기 가로수에 핀 꽃들.

음… 모르겠네.

백일홍이야. 백일 동안 빨갛게 핀다고, 백일홍.

응. 백일홍이구나.


엄마의 여름엔 어떤 꽃이 피었을까. 스물이 되었을 땐 뭘 하고 싶었을까. 당신에게도 꿈이 있었을까. 둥실 수면위로 떠오른 말들. 한참을 묻고 싶었지만 결코 하지 못한 두려운 질문들. 있었대도 없었대도 대단원은 비극이 될 테니까.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들썩이는 입술을 적극적으로 말리며, 나만이 느낄 정적의 어색함을 택했다. “아,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필요했다.


***


백일홍 가지를 꺾어 유리병에 꽂아놓았다. 섬의 모든 의미는 결국 여기에 있다.  병에서 백일홍을, 까만 하늘에서 작은 별을 찾아내는 . 어떤 하늘에는 너무 작아  보이지 않는 별도 있다. 작은 별은 부끄럼이 많아 똑바로 쳐다보면 금세 숨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별을 보려면 어둔 밤하늘을 열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조금씩, 아주 가끔씩 힐끔거려야만 한다. 그러면  자리에 나타난 작고 수줍은 반짝임을 발견할  있다. 섬을 보는 법도 같다. 그저 사람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 그러다보면, 그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진짜 섬이 얼굴을 보여준다. 낮은 곳에서 홀로 울리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섬에 살고 있다. 자신의 섬을 사랑하며 잘 가꿔나가는 사람도 있고, 아직 발밑의 섬을 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섬을 언제 발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나는 섬을 쌓고 있었다. 살아온 시간은 뭉치고 굳어져 든든한 땅이 되어주었다. 이성과 감정은 경계를 허물어 하나의 숲을 이루었고, 취향은 향기가 되어 섬 전체에 스몄다. 좋고 싫음, 옳고 그름, 기억과 생각. 쌓여진 모든 것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비로소 섬을 이룬다. 그래서 나의 섬에는 수많은 이름들이 뒤섞여 살아간다. 이 이름들을 존중하여 부를 때에야 섬은 순환하고 숨을 쉰다.


당신의 섬이 보여요.

받는 주소는 비워둔 채 바다에 우편을 부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